약사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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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4 (목)

예스킨

약사의 적은 약사다? 호모 호미니 루푸스

대한약사회 강봉윤 홍보위원장

사례 # 1
"면대약국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청구액 환수와 업주 협박 등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약국에서 상근을 하며 월 70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5년째 면대약국에서 일했던 60대 약사는, 면대약국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업주는 면대약국을 그만두면 신고를 하겠다고 겁박을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는 내용이다.

사례 # 2
"약사님, 꼭 고발까지 해야겠습니까. 서로 좋게 좋게 해결하시고 고발은 그냥 접어두시죠."

보건의료 공무원들의 약국 중재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의성 짙은 불법행위 약국을 증거와 함께 고발해도 '웬만하면 둘이 좋게 해결하라'며 고발을 만류하는 상황이다. 불법행위 약국에 약사가 지쳤듯, 약사 간 갈등에 공무원도 지쳤기 때문이다.

복지부 한 관계자는 "약국 불법행위가 하루에도 몇 백 건씩 접수 된다"며 "이걸 하나하나 기억하고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약사들 간 고발이 대의명분이 아닌 터무니없는 고발로 상대 약국을 궁지에 몰아넣는 '다른 약국 죽이기'로 전락한 탓도 있다.

사례 # 3
최근 부산광역시약사회는 모 분회 임원 약국 한 곳을 본인부담금 할인 행위로 고발한 뒤, 본인부담금 할인 금지 포스터를 회원 약국에 일괄 발송하며 할인 행위 근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위에 든 사례 세 가지는 모두 최근에 전문지를 통해 기사화된 내용으로, 현 약계 내부의 문제점인 면대와 약국 간 갈등, 난매 문제를 적나라하게 적시하고 있다.

근대 정치 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토머스 홉스에 따르면, 동물은 현재 속에서 살지만 인간은 미래에도 오랫동안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 부와 명성을 쌓으려 하고, 타인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려 그들의 재산과 시간을 뺏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홉스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호모 호미니 루푸스"라는 라틴어로 요약했다. 즉 '인간은 인간에 대해서 늑대다'라는 말이다.

흔히 ‘약사의 적은 약사다’라는 말은, 홉스의 생각에 따른 ‘약사(파르마키스타)는 약사에 대해서 늑대다'라는 말을 빗댄 것으로 너무 자조적이다.

난매 문제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홉스의 방식을 따른다면, 협력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필자가 예전에 말한 '제한적 합리성'이라는 생각과 일치한다. 허버트 사이먼의 얘기를 빌어 규칙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약사들이 끊임없이 오르는 일반의약품 가격을 얼마로 책정할지를 고민하지 않도록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공식적 규칙은 정부와의 협상을 통한 정찰가제가 될 터이고, 비공식적 규칙은 약사회 차원의 가이드라인 설정이나 강도 높은 자정운동이 될 것이지만, 이는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약사는 약사에 대해서 늑대’인 행동을 하는 일부 약사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이분법이 작동하는 다분화 약사 사회( 동네약국과 문전약국, 층약국과 일층약국, 개국약사와 병원 제약 유통약사, 한약사 통합파와 반대파, 4년제 약사와 6년제 약사, 청년약사와 고령약사 등)에서 만남 부재, 소통 부재에 따른 윤리의식 실종이다.

아울러 의약분업 하에서 약사직능 축소에 따른 상실감과 사회 전반적인 경제 위기에 따른 천민자본주의에 편승해 기본적인 동업자간의 예의( professional courtesy ) 조차 무시하고 있다. 이는 철학부재에 따른 미래 지향적인 공동의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 대가족사회에서는 어른들을 통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히면서 상당 부분 똑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 규범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었다.

현대 핵가족사회에서는 라이프스타일, 가치관 등이 다양해지면서 오랜 세월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규범이 규범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 그러한 규범이 내면화 되지 않아 규범을 벗어난 행동으로 바로 치닫게 된다. 결국 사회 전체에서 같은 규범을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데, 이런 사회 상태를 아노미라고 한다.

이러한 약계의 아노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면허대여는 절대 안 돼!, 조제료 할인은 절대 안 돼!’라는 약사 사회 공동의 규범을 내면화하여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필자는 지난 달 경기도 k분회 연수교육에서 약사윤리에 대한 강의를 하며, 약대 교과과정과 약사 연수교육 과정에 약사의 윤리의식을 키울 수 있는 직업철학을 필수이수과목으로 채택하여 미래 지향적인 공동의 목적을 내면화 시켜야 하고, 자정작용과 연계한 자율징계권 강화, 약사면허 갱신제 도입, 반회, 동문회, 동호회 활성화나 SNS를 통한 소통으로 자주 만나다 보면,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생겨 이웃 약국 간 난매, 약국 간 갈등을 예방할 수 있고 면대를 철폐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제레미 벤담은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에서 ‘기억자아의 폭압’으로 인해 자신의 생활에 대해 생각하면서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각이 기억자아의 관점임을 밝혔다.

면대나 난매에 대한 기억자아가 평생 자기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

면대나 난매로 설령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언정 세상을 헛사는 것이고, 플라톤의 말처럼 평생 그림자만 보고 사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서 삶에는 뚜렷한 원칙이 서 있어야 하고 설령 약간의 불이익이 따르더라도 원칙을 우직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올바른 삶의 길이라 했다. 삶의 본질이나 핵심을 꿰뚫으면 성공적인 삶에 다가설 수 있다.

학술강좌나 약국경영활성화도 좋지만 약사 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 본 시론은 약사공론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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