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공론

팜엑스포 & KPA 세미나

2017.03.27 (월)

나도 시간은 오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 사회약학실 손현순 교수

삶이 단순할수록 풍요로울 수 있음을 배우고 있다는 한 소설가의 고백에 동의하면서 나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내일을 생각해 보려던 참이었다. 막장소설보다 더 심한 소설을 써 놓고 자꾸 억지로 읽게 만드는 시국이, 반듯하고 소박하게 사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어지럽다. 단순함이 주는 내면의 풍요로움이 아닌, 절제되지 못한 풍요로운 욕망이 자신의 삶을, 그리고 세상을 얼마나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겨울은 아마도 길어질 테고 그래서 초록의 봄을 더 간절히 그리워하지 않을까 싶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로 설명되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제가 오늘을 힘겹게 만들기도 하지만 내일을 꿈꾸게 하는 오늘이 되게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다.

약대 졸업 후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로에 대한 그리고 젊음에 대한 그리움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난 것일까? 지난 달 우리 동기들은 카톡방 수다를 통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은 가는 것’임을 또렷이 해석하고 있었다. 저마다의 색깔로 물들어가는 단풍과도 같은 우리들의 이야기가 함께 걷는 덕수궁 돌담길 걸음걸음에 스몄고, 많은 것을 꺾어버릴 것 같았던 바람 속에서도 그저 흔들리다 다시 서 있는 은은한 억새들이 되어 우리들은 달빛 아래 빛나고 있었다. 맑았던 우리의 젊음이 30년 동안의 멀고 긴 여행을 하고 난 후 ‘다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것 같았다. 조금씩 다른 모양과 다른 빛깔의 국화꽃 한 송이를 피워내고서 말이다.

그 송이송이 국화꽃들은 지나온 시간과 공간 위에 쌓인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서투르게 사랑했던 이야기, 그래서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 존중받지 못해 상처받고 슬펐던 이야기, 화려한 가면 뒤에서 눈물 흘린 이야기, 함께 사진 찍으며 외로웠던 이야기, 굴레 안에서 오히려 자유롭고 싶었던 이야기, 뒤늦은 기다림이 가슴 저리게 아름답기를 바라는 이야기,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낼 수 없는 이야기,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그러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마주하면서 그렇게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이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고 또 믿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다시 꺼내 보는, 지나온 여행길에서의 골목골목 순간순간은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고 눈물 나는 그리움이다. 투명한 가을햇살이 마음 깊숙이까지 들어와 준 그날은 덕수궁 돌담길이 더욱 아름다웠다.

내일은 희망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주 그러한 마음을 모으고 모아서 우리 학교 약대의 학술제와 홈커밍데이 행사를 마련하였다. 그 곳에서 우리는 ‘시간은 오는 것’임을 또렷이 확인하고 있었다. 파릇파릇한 재학생들의 노랫소리와 1-2년차 사회인이 되어 모교를 찾은 졸업생들의 청량한 목소리가 캠퍼스를 가득 채웠고, 그 안에서 뿌듯함과 따뜻함으로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싱그러운 젊음들이 이제 막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도 오랜 시간 동안 멀고 긴 여행을 하고 여기에 다시 돌아와 거울 앞에 설 것이다. 조금씩 다른 모양과 다른 빛깔의 국화꽃 한 송이를 피워내고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들 또한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여행에서 그들은 많은 이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서로 다른 배경, 서로 다른 생각과 서로 다른 경험들은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충돌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내면서, 아름답고 싶었던 여행을 망치기도 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왜 그리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서로가 힘들어 하는 사이 여행이 끝나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풍요로움이라는 것이 외면의 욕망의 크기가 아니라 내면의 깊이 만큼인 것을 우리가 함께 더 많이 알아가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의 여행은 마음껏 사랑하고 그래서 완성된 이야기, 즐거웠고 웃음 활짝 피웠던 이야기, 풍요로웠고 온전히 자유로웠던 이야기, 아름다웠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로만 가득했으면 한다. 그리고 세상이 결코 그들을 배반하지 않았으면 한다. 먼 훗날 사진첩에서 다시 꺼내 보는, 여행길에서 만난 골목과 순간들이 그들에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하면서 또 미소 짓게 하는 그리움만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밤하늘의 별들이 우리들 마음 속에 내려와 준 그날, 포천 캠퍼스의 가로등도 따뜻하게 빛을 내 주고 있었다.

그 빛들 사이로 나의 1986년과 2016년은 우리 학생들의 2016년과 2046년과 겹쳐 보였다. 그들은 굳이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울지 않아도 한 송이 국화꽃을 피워낼 수 있기를, 그들 인생의 가을 이맘 때 젊음의 뒤안길을 지날 때 아쉬움이 그리움보다 더 크지 않기를, 그리고 그들의 여행이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했었노라고 얘기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기도해 본다.

다시 눈뜬 아침, 나는 20대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마음속에 무엇을 간직하고 살 것인지 생각하라고, 그래서 30년 후 맞는 아침이 잔잔한 호수이기를 바란다고, 그런 너를 기다린다고.

그리고 나는 그 편지를 우리 학생들에게 부친다.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는 한 시인의 소망처럼, 나도 그러고 싶다.


※ 본 시론은 약사공론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서울 서초구 효령로 194 대한약사회관 3층   Tel : (02)581-1301   Fax : (02)583-7035    kpanews1@naver.com
Copyright (c) 2004 kpanews.com All rights reserved.

대한약사회 약학정보원 의약품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