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공론

2회헬스케어정책포럼

2018.11.16 (금)

예스킨

인문약학? 인문약학!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 사회약학실 손현순 교수

제주에서 있었던 대한약학회 추계학술대회 기간은 가을의 중심에서 백만 불짜리 파란하늘을 통째로 선물받은 날들이었다. 과거보다 진일보한 교육성과를 목표로 약대 통6년제 교육의 내용과 틀을 새롭게 구성하고 있는 시기인지라, 우리 사회약학분과는 인문사회약학 교육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초청연자로 온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는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정착된 의료인문사회교육의 경험과 시사점을 잘 정리해 주었다. 덕분에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인문약학’을 올바로 이해하고 정의하고 자리잡아가기 위해 어떻게 개념을 잡고 시작해야 할지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출발점은 ‘왜 약사에게 인문학인가?’에서부터다. 이에 앞서, 우리가 다루는 약이 보건의료 구성요소의 하나이기 때문에 약은 의료와 함께 이해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의학과 의료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의학의 경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그랬듯이 인간의 몸과 질병을 철학적 인문학적 시각에서 이해했던 고대를 지나고, 과학적 연구방법이 도입된 근대 이후 과학적 의학이 탄생했고 20세기까지는 의학교육도 과학적 의학에 충실한 방식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다가 21세기 들어 의학은 사회학과 인문학이 융합된 학문으로 변화했다.

결국 학문의 역사는 시대변화에 따라 학문의 목표가 무엇을 중심으로 흘러왔는지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의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약학도 발전해온 셈이다. 물론 의학교육의 목적은 의료가 전부인 반면, 약학교육의 목적은 약효물질개발과 약료가 공존한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의 약학교육이 약사면허증을 획득하는 과정인 점을 감안한다면 의학교육과 유사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해해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과학 중심의 의학이 왜 현대에 들어 인문학적 관점과 융합적 사고를 중시하며 교육적 틀까지 바꾸게 된 것일까?

의사나 약사나 모두 환자의 질병이 탄생시킨 직업이다. 의사나 약사를 양성하는 의학이나 약학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므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미치면,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생의학적 현상이나 약물이 나타내는 약리학적 작용 자체는 비록 과학적으로 잘 설명된다 하더라도, 개인의 생각이나 행동,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이 융합되어 나타나는 질병과 약물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과학이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는 설명에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약학을 과학으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약사가 되어 약학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약료를 시행할 때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심리, 행동 등 비과학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만 하는, 다시 말하여 인문학적인 사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약물사용과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환경적 요소를 포함한 다면적 판단까지도 필요로 한다.

그러한 필요성이 그 동안 과학적 연구방법을 이용해 발전해 온 약학이 이제는 인문학적이고 사회학적인 내용을 함께 포함하는 학문으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이번 통6년제 약학교육의 틀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로 반영되기에 이르렀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문학적 문제가 더욱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인식이, 지금까지의 과학기술 발전에 치중했던 교육패러다임을 인간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까지 함께 배우는 교육으로 변화, 발전해야 한다는 결정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과학이라는 것이 사실은 학문적 방법을 의미하는 용어일 뿐 진리 자체를 확정짓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의약품의 개발과 사용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과 역량이 궁극적으로 반드시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만일 약학대학 교육이 학생들에게 생의학적 관점에서만 교육하고 생명의 주체인 인간의 사회적 속성이나 특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관점을 소홀히 할 경우, 학생들이 자신이 배운 약이 인간에게 정녕 유용하게 사용되는지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약사로 성장해 나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는 일과 관련된 올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교육받지 못한다면, 자신이 배운 전문지식과 기술과 역량이 비인간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우리는 지나온 역사 속에서 그러한 일들을 많이 보아왔다.

약대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이란 고도의 약학지식을 갖춘 덕분에 안정적 직업을 갖는 선택받은 자의 특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진정한 전문가로서의 필수덕목을 잘 갖춘 자의 특성으로 이해되었으면 한다. 그럼으로써 약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올바른 답을 내리고, 올바른 신념과 가치를 가지며, 우리 사회의 복잡한 의료문화 속에서 약의 사용이 정의롭게 실현될 수 있도록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약사의 모습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자극할 인문약학 교육을 통해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파란하늘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듯, 이제우리는 약학과 관련되는 인문학, 사회과학 및 예술까지 아우를 인문약학 교육에 대한 밑그림도 그리고 색채도 입혀나가는 작업에 동참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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