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이가탄한국약사문학상 당선작

제4회 약국수기 공모전

[ 대상 ]

단골과 진상사이

황은경약사

황은경약사
(오거리약국)

1970년대 우리 동네에도 가까운 약국이 있었다. 부인과 남편이 사이좋게 운영하던 약국이었는데 부동산 붐이 일어날 때여서 그랬는지 몇 년 만에 약국을 그만두고 동일 상호의 예식장을 크게 운영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초등학교까지 한참을 걸어가다 보면 또 하나의 약국이 있었는데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같은 상호로 운영되고 있다.

안쪽으로 제법 큰 공간을 가진 긴 카운터 테이블이 있었고 바깥 유리창에 붙은 나무 의자에는 늘상 어른 한 두분이 앉아 계셨다. 약국에는 대일밴드를 사러갔던 기억이 있을 뿐 그다지 친근한 추억은 남아 있지 않다.

약대를 다니는 동안에는 다른 쪽의 진로를 계속 기웃거리면서도 졸업 후 약국을 잘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변해 1999년에 나의 약국을 하게 되었다.
기왕 하는 약국이라면 부산의 세명약국, 종로의 보령약국처럼 한 곳의 랜드마크가 되는 약국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유행했던 "육일약국 갑시다"를 벤치마킹하기로 하였다. 약국 상호를 알리기 위해 약국과 10분 거리인 집에서 택시를 타면 “오거리약국 갑시다”를 외쳤다. 솔직히 약사인 나는 부끄러워서 그 소리를 잘 하지 못하였지만 집의 식구들은 열심히 오거리약국 상호를 외쳐주었다.

약국 안에도 “오거리약국에서 만납시다”라고 빨간 글씨로 선명하게 인쇄해서 약국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두었다.

근처 노인정에 선풍기도 보내고 쌍화탕도 보내었다. 처음에 10평 남짓으로 시작한 터라 확장인테리어를 새로 할 때마다 재개업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번 수건도 나누어주었다.

육일약국처럼 택시기사들에게 일일이 잔돈을 바꾸어주진 못했지만 다행히 약국이 오일장 시장 입구에 있어서 택시들의 정거장인 장점은 있었다.

늦게 시작한 약국이었지만 약대 졸업하고 아이를 키우던 전업주부 10여년 동안 암투병하시던 친정아버지, 가지가지 질병을 앓았던 두 아이덕에 많은 소아과 병에 익숙하였고 아픈사람의 마음에도 쉽게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누구의 이야기이던, 약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도 정말 성실하게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우연치 않게 고객들의 건강검진에서 조기암도 여러 번 발견되었다.

얼른 오거리약국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길을 지나가던 누군가 <오거리약국>라는 말만 해도 설레었다.

같은 얼굴의 누군가가 하루이틀삼일 연속으로만 와도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른다.
단골... 그 귀한 단골이 생기기까지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약국에만 온다고 생각했던 단골이 이웃 약국에 가 있는 걸보면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일부러 이웃 약국 안을 들여다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오기도 했다. 내가 따뜻하게 건넸던 한마디, 그 시선 혹은 쌍화탕 한 병이 무척 억울했고 다음에 다시 오면 조금은 어색하게 대하곤 했다.

정말 사람들에게 무한정의 사랑을 쏟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17년의 세월이 흘러 오거리약국에도 많은 단골이 생겼다.

누가 약국의 단골인가 하는 문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20/80의 법칙을 적용하기에는 훨씬 복잡한 셈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매일 박카스 먹으러 오는 사람, 감기약은 오거리약국이 잘 듣는다고 감기약 사러오는 사람, 가끔 오지만 제법 비싼 통약을 사러오는 사람, 아주 가끔 와서 정말 한 번에 많은 덩치를 사가는 사람, 어느 병원의 처방이던 조제는 오거리약국에서 하지만 일반의약품은 거의 사지 않는 사람, 많은 것을 사지는 않지만 약사님 덕에 건강을 찾았다는 사람, 정말 약사인 나를 좋아하는데 상담만 주로 하는 사람, 정말 많은 것을 사가지만 요구가 많은 사람 등등 단골이라는 이름을 달고 싶어 하는 고객들이 많이 생겼다.

이중에는 분명히 한때는 분명 단골이었는데 어느 순간 뜸한 사람, 단골이라는 이름으로 정말 유명품만 사는 사람도 있다.

뿐만 아니라 단골은 만들었는데 그 단골이 진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전국 2등인 노인상권이다보니 단골들이 약국과 함께 나이가 들어버린 덕이다.

분명 고마운 단골이었는데, 정말 오거리약국의 말이 법인 것처럼 얘기를 잘 들어주었는데 어느 순간 약국의 서비스를 탓하고 가격을 탓하고 제품을 탓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혹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약국에 전화를 해서 문의를 해야 결정을 할 뿐 아니라 본인은 아주 다른 대접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되었다.

의약분업이 되던 2000년부터 약국을 방문한 김어머니가 있다.

그 당시의 김어머니는 50대로 처음부터 아주 까다로운 성격이었는데 약국과 인연을 맺은지 1년도 안 돼 건장하던 남편이 병원내 감염으로 갑자기 사망하게 되었다. 남편의 사망에는 흔히 재산문제가 생기는데 친여동생이 언니의 재산에 간섭을 하게 되면서 친정과의 인연을 끊고 모든 하소연을 약국에다 하게 되었다. 그 어머니에게 딸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멀리 떨어진 친정 엄마 같다는 생각으로 그 인연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17년간 김어머니는 매사를 약국에 묻고 또 묻고 신뢰를 주면서도 본인의 약값을 남들보다는 조금이라도 싸게 달라고 요구를 하게 되었다. 단골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가격을 조정한 것도 모자라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본인이 궁금하면 수시로 약국으로 전화를 한다.

17년이 흐르는 사이 몸은 점점 나빠지고 성격도 종잡을 수가 없다.

또 최어머니가 있다. 60대인 최어머니가 언제부터 약국의 단골이었는지 생각은 나지 않는데... 정말 약사인 나의 말을 정말 신뢰하기 때문에 오거리약국이 주치약국이다. 다만 밴드 하나를 사러와도 최어머니는 맛있는 드링크를 먹어야 한다. 얼마 전에는 약국에서 약값을 비싸게 받았다고 오해를 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물어내어야 했다.

정어머니가 있다. 70대의 정어머니는 정말 나이에 비해 체면을 지킬 줄 아는 멋진 어머니이다. 80대 이시던 정어머니의 남편이 돌아가시게 되어 혼자 지내시게 되었다. 자식들이 외지에 있어 혼자 계속 지내셔야 하는데 어머니의 일손이 필요할 때면 약국에서 전부 연락을 해서 구해드렸다. 그런데 막상 어렵게 연락을 해서 사람을 연결해주어도 막상 마지막으로 결정할 때는 다른 쪽의 소개로 사람을 구하게 되니 바쁜 약국생활에 신경쓴게 뭔가 싶기도 하다.

한숨이 나고 내가 한심스럽다. 바보같기도 하다. 뭐냐 아이고 반편이도 아니고!!!
그렇지만 어르신들이니 그래도 우리약국에 오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젊은 단골들은 좀 나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 나이 때면 이사도 어른들보다 빈번하고 정보도 많다.

그들은 나의 경쟁 이웃약국으로 가는 게 아니라 적절한 가격으로 사기 위해서 인터넷, 마트 등을 이용하고 서비스 좋은 새로운 병원으로 옮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당연히 약국도 쉽게 옮긴다.

아주 똑똑한 듯 보이고 본인은 스스로 완벽맘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주부들도 많다.그들은 조금만 실수를 하면 블러깅을 하고 입소문도 쉽게 옮기며 말을 함부로 하여 남의 맘을 헤아리지 않는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하기야 약사인 나도 약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고 그게 맘에 안들면 짜증을 낸다. 약국서비스를 잘하려고 신경을 쓰면 쓸수록 다른 곳의 허술한 서비스가 눈에 띄고 입이 참지 못하고 자꾸 지적을 하게 된다. 나도 완벽한 주부라는 미명하에 어느새 진상짓을 하고 있다. 음식점을 가던 마트를 가던 백화점을 가던 별난 나의 모습을 나는 알고 있다.

약국에 오는 어르신들도 모르시는 건 아니겠지. 알고 있지만 어쩔수 없으신걸까?
자꾸 변덕스러워지는 내 자신도 세월이 겁이 나는데 어르신들은 더하시겠지...
약국식구들과 잘 지내왔기 때문에 조금 무례해도 넘어간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도 내 어머니처럼 그전에 베풀어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같이 나아가려한다. 그러다 덜컥 이별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그 모든 것도 다 안고 앞으로 30년을 더 걸어가려고 한다.

처음 내가 원했던 한 곳의 랜드마크 약국이 되어가고 있는지, 어린나무를 심어 이제 막 어린티를 벗어난 지금 거기에 대한 평가는 이르겠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다보면 언젠가는 나의 소망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사랑인 귀여운 진상어머니들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