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마더스스토리 공모전 약사 부문

최우수상

부치지 못할 편지

강규희 약사

엄마...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이름이겠지만 나에겐 차갑기만 한 단어입니다.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시던 30여 년 전의 그 날... 엄마의 눈 속에 7살의 어린 나와 네 살배기 동생의 모습은 담겨있지 않았던가요...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없이 매정히 떠나버리시던 날, 저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버렸습니다. 원망의 감정보다는 남은 가족들에 대한 배려였어요. 하얀 피부에 안경 쓴 얼굴, 파마머리를 한 엄마의 어렴풋한 모습 하나만을 남긴 채 말예요. 늘 반장과 부반장을 도맡아 해도, 공부를 잘해서 어른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아도, 나를 흘끔거리며 귓속말로 쑥덕대던 친구들 앞에서 나는 늘 ‘엄마없는 아이’로 돌아갑니다. 갑작스런 비에 우산 들고 마중 나온 엄마들의 모습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애써 부러운 마음을 숨겨야했던 걸 알고 계실까요. 소풍날이면 조막손으로 주물주물 싼 울퉁불퉁 옆구리 다 터진 김밥도시락을 부끄럽지 않은 듯 맛나게 먹었던 마음을 짐작이나 하실까요. 늘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살아왔지만 그러기 위해선 속으로 끊임없이 “괜찮다, 나는 괜찮다.” 다독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연이라는 거... 참 신기할 노릇이지요. 제 나이 서른 넘어 저 또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나서 다시 이렇게 엄마를 만나다니요. 아버지와 재결합하시어 저의 친정어머니 자리로 돌아오시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입니다. 기적같은 우연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긴 시간 뒤에 마주한 엄마의 얼굴은 내 오랜 기억 속의 얼굴과 거의 다름이 없네요. 다만 환하고 수줍은 듯한 미소가 기억 속 차디찬 표정과 너무도 달라서 혼란스럽습니다. 그 혼란스러움을 감추고 똑닮은 웃는 얼굴로 맞이했지요. 내 웃는 모습이 젊은 나날의 엄마와 닮았다는 소리에 대답 없이 그저 웃고만 있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제가 알지 못했던 많은 사연들이 있었지요. 저와 동생들의 고생이야기에 눈물짓기도 하셨구요. 배다른 다른 두 동생들도 따스히 친자식처럼 품어주겠다 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엄마없는 아이' 로서의 제 자화상이 너무 굳어버렸기 때문일까요. 뭇 사람들은 이리 말하더군요. 자식을 낳아보면 그제사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하지만 전 아이를 낳고보니 더더욱 엄마가 이해가 안가더군요. 어찌 이 어린 아이를 두고 떠날 수 있었던지요. 떠나고서 눈에 밟혀 어찌 살아지더냐구요. 항상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저를 볼 때마다 지으시는 그 해사한 눈웃음 뒤에 항상 머물러있는 미안함을 읽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모질지 못한 성미라 아마 가슴에 묻고, 또 무덤에 묻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부치지 못할 편지입니다. 이 모든 감정들과 회한들을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엄마를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와서 엄마를 원망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도 무채색입니다. 이것은 새롭게 쓰여져야 할 우리의 관계에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른 땅에서 새로이 잔꽃이 피어나듯 잔잔하고 조용하게 쓰여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원망일랑 고이 접어두고서 말이지요. 함께한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모녀 사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새로이 그려나갈 날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희망이 있습니다. 제 마음에서 원망이 사라지는 날이, 엄마의 눈에서 죄책감이 지워지는 날이 언젠간 오기를 꿈꿔 봅니다. 그런 날이 오면 비로소 나도 내 안의 '엄마 없는 아이'를 토닥여 달래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나면 '엄마'라는 단어는 내게도 따뜻한 이름으로 남아 있겠지요. "사랑한다"는 고백은 그 날에 하겠습니다. 이만 줄일께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