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부문

대상

우수상

특별상

시 부문

우수상

특별상

청년문학상

제5회 이가탄 한국약사문학상 공모전 수필 부문

[최우수상]

비가 내려도 괜찮아

최재윤

(경기 안산시)
아침부터 빗방울 돋는 소리다. 어감만큼이나 예쁘다. 근데 그다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질척이는 길도 그렇고 우산 쓰는 것도 귀찮을 따름이다. 웬만한 거리는 그냥 뛰어간다. 그때 뒷목덜미에 떨어지는 차가운 빗방울이 소름끼치게 싫다. 안경에 서리는 김도 싫고 시야가 좁아지는 운전은 더더욱 싫다. 그런데,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 초점 잃은 눈으로 그저 멍하니 여유롭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셀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물며 그 곳이 제주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여행을 다녀 본 사람들이라면 여행 중에 비가 오면 정말 짜증스럽다는 것을 알 것이다. 미처 우산도 준비 못해 허름한 점방에서 산 천 원짜리 비닐 우의 밑으로 꿉꿉해지는 기분 나쁜 감촉과 아랫단이 젖어 들면서 물기를 머금어 착 감기어 오는 청바지에, 아예 닦는 것을 포기한 안경을 내려쓰고 굵은 테 너머로 이정표 찾아 헤매는 불편함이 너무도 싫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은 모두가 비 오는 제주가 좋단다. 제주여서 괜찮단다. 아예 비가 와야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여행지라고 이구동성 얘기들 한다. 물론 좋다. 비 오는 날 한적한 카페를 찾아 이미 무채색으로 색마저 바랜 바다를 바라보면서 약간은 진한 향기를 담은 커피 한 잔이 지친 심신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퍼즐 조각 맞춰 놓은 것처럼 까만 돌담과 초록 가득한 당근 밭의 비오는 날 수채화를 떠 올리며 좋아하는 사람, 중산간도로 도로 위로 살포시 깔리는 안개를 헤치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탄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 이중섭 미술관이나 본태 박물관을 찾은 사람은 이렇게 비 오는 날 우울한 기분의 감정을 이입시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진정한 작가의 에스프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실제 엉또폭포의 물 떨어지는 웅장함은 제주 특성 상 비가 오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장관일 수도 있겠다. 더 많겠지. 근데 나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좋다. 채우지 않아도 되는 도화지 속의 여백이다. 몇 년 전 초여름, 아마 6월이었지 싶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제주를 찾는 건 나름 쉰다는 개념으로 갔었다. 물론 훨씬 이 전에는 관광의 목적이 더 컸겠지만. 경치 좋은 곳에서 편하게 쉬러 갔으니 당연히 제법 큰 호텔을 주로 이용했었다. 편한 잠자리, 친절한 대접 받으며 비싸도 소위 맛 집이라는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했었고, 나름 만족해하면서 ‘그래도 제주도야’를 되 뇌이곤 했었다. 그 때쯤 제주에는 게하(게스트하우스)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젊은 사람들의 여행 후속 담이 인터넷에서 떠들기 시작하여 나도 아직 젊지 않느냐는 괜한 우쭐함에 예약도 없이 무작정 제주를 향했다. 젊은이들처럼 발길 닫는 대로 다니다가 아무 게하나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해서다. 그때는 많지도 않았지만, 가는 곳마다 젊은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불편하지 않겠냐며 정중히 거절당하곤 했다. 아마 내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자기네들이 나잇살 먹은 객이 오히려 불편했으리라. 그러다 밤이 어둑해서야 찾아 간 곳에서 마침 독방이 있는데 조금 비싸도 좋으냐는 말에 얼른 승낙을 하고 주인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제일 끝 방에 피곤했던 다리를 풀었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어제 공기가 살짝 무겁다고 느꼈었는데 비가 오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자리에서 눈을 떴을 때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 연주를 들었다. 톡, 토독, 토도르르독, 토독, 통통통. 청아하다. 아니 이 소리에 잠을 깼나보다. 그래 어제 주인장이 농가 그대로 내부만 조금 개조해서 게하를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지붕 색깔이 파란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 지미오름에서 내려다 본 종달리 마을의 지붕 색깔이 파랬던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거라는 기대가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냥 빗방울 연주를 들으며 마냥 누워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관광하러 집을 나섰는지 적막 속에 들리는 건 빗소리뿐이다. 젊은 사람들이 부지런하기도 하다. 하긴 어떻게 온 제주인데. 시간이 아깝기도 하겠지. 이 빗속에 강행군할 수 있는 청춘이 부럽기도 하고. 방 뒷문을 열었다. 바로 숲이었다, 나무들이 비바람에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붙어 있는 조그만 툇마루에 쪼그려 앉아 나무가 부르는 노래와 양철지붕이 퉁겨내는 현악기 소리의 앙상블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들리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냥 초점 없는 눈도 가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無念無想이라고 할까. 불교에서는 수행에서 그릇된 분별이나 집착을 떠나 마음이 빈 상태를 말하지 아마. 해탈의 경지. 내가 그 상태까지 간 걸까. 에이 아니겠지. 매슬로우가 얘기하는 욕구의 5단계에서 마지막 자아실현의 욕구를 이룬 성자들에서나 볼 수 있는 개념이 아닐까. 근데 매슬로우는 하위개념의 욕구가 채워져야 그 다음 단계의 욕구가 이루어진다고 하였는데. 그렇지. 나는 아직도 하위 개념의 생리적 욕구, 안정에 대한 욕구,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 자기존중에 대한 욕구도 채워지지도 않았는데. 그냥 멍 때리는 걸로 해두자. 근데 그게 그냥 좋았다. 5살 때 고향을 떠났다. 그 어린 시절 몇몇은 기억이 난다. 나중 일이지만 처음 게하에서 고향을 떠 올렸던 것 같다. 고향 집이 그러했다. 뒷문을 열면 조그만 툇마루가 있었고, 바로 대나무 숲이었다. 비가 올 때면, 바람이 불 때면 대나무는 노래를 불렀다. 춤도 추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모두들 밭일 나간 집에 늘 혼자 있었다. 같이 노래를 불렀다. 대나무와 음정을 맞췄다. 대나무와 함께 춤도 추었다. 우리 둘만의 시간은 너무나 행복했다. 그리고는 배고픈 채로 고향을 떠났다. 떠나도 배고프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교 음악시간 외에는 절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물론 춤도 추지 않았다. 비 내리는 숲은 슬픈 노래를 불렀다. 바람 부는 숲이 추는 춤은 한이 서려 있었다. 그냥 웅크리고 쳐다보는 나의 눈은 이슬만 달려 있을 뿐이다. 날이 맑은 날에 는 너도 노래 부르지 않았겠지. 춤도 추지 않았을 거고. 나를 닮아 있었다. 그냥 그렇게 살자. 지금까지는 나 살기 바빠 너를 찾지 못했어. 아니 네가 거기 있는 줄 몰랐어. 네가 그렇게 아팠는지도 몰랐어. 진즉에 나를 불러주지. 아니 원망은 아냐. 그냥 미안해. 네가 노래를 부르면 나도 따라 하고 싶어. 돌림 노래도 부르고 싶어. 기쁜 노래도 부르고 싶어. 물론 슬픈 노래도 괜찮아. 그래 춤도 추자. 너의 상처, 아니 우리 모두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나는 하루 종일이라도 괜찮아. 그래 이젠 하루 종일 비가 내려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