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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제약회사 키운 약사…뿌리깊은 거목 지다

한미약품그룹 임성기 회장 2일 타계…'신약'과 '뚝심' 통했다

2020-08-02 17:55:57 이우진 기자 이우진 기자 wjlee@kpanews.co.kr


국내 제약업계의 큰 나무였던 한미약품그룹 임성기 회장이 2일 새벽 타계했다. 업계 내에서도 연구개발과 신약개발을 통해 시장 선도는 물론 업계의 세계화에도 큰 역할을 맡았던만큼, 그가 40여년 동안 이뤄왔던 업적을 짚어봤다.

임 회장은 1940년 3월 1일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이후 1965년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2년 뒤인 1967년 서울 종로5가에 임성기약국을 열고 약국을 경영했다.

특히 임성기약국은 베트남전 참전 이후 병을 앓던 이들에게 항생제 투여와 치료를 해주는 약국으로 유명해지며 서울 3대약국 중 하나라는 칭호도 얻었다.

약국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임 회장은 이후 약국을 경영하며 번 돈으로 임성기제약을 설립하고 동료 약사들과 함께 회사의 이름을 한미약품으로 바꿨다. 국내 제약업계 중에서도 연구개발에 힘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한미약품의 시작이었다.


국내 첫 개량신약으로 꼽히는 '아모잘탄'은 국산의약품 처방 1위를 기록한 바 있을만큼 업계에 큰 영향을 일으킨 바 있다

한미약품의 초기 수입은 특허만료 된 제네릭의약품과 해외 품목 수입. 하지만 제네릭을 통한 영업은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 임 회장은 단순 제네릭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분석 아래 '신약 개발'이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한미약품 설립 당시 국내에서 영업중이던 제약사는 200여개 남짓. 경쟁이 치열했지만 임 회장은 제약사 설립에서부터 개발이라는 측면에 관심을 뒀다. 실제 약국 2층에서 해외의약품집을 한 페이지씩 정독하며 의약품 개발에 열의를 불태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특히 하나의 의약품에 '올인'하지 않고 다양한 신약물질을 연구하고 세계적 석학에게 컨설팅을 의뢰하며 끌어온 신약개발이라는 목표는 국내 제약사에게 '파이프라인'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알려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는 최근 나온 2분기 잠정 공시에서도 유실히 나타난다. 한미약품의 2020년 2분기 연결 기준 잠정 매출은 2434억원이다. 이중 영업이익은 106억원이었지만 외려 연구개발은 매출의 20%에 육박하는 483억원에 달했다.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국내 제약업계 전체의 연구개발비 평균이 지난해 기준 6~8%를 오르락내리락함을 떠올리면 영업이익의 4배 이상을 연구에 쓸 수 있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개발 분위기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다국적 제약사의 상품을 팔기보다는 자체 제품 개발을 통해 현재까지 상품비중이 높은 타 국내사와 달리 제품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진 것 역시 그간의 결과가 빛을 발했다는 분석이다.

임 회장을 일컫는 또 하나의 평은 '뚝심있는 경영자'다. 불과 30년 전까지 국내에서 신약이 개발될 확률, 나아가 국내 제약업계 혹은 신약이 해외로 진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임 회장은 '대충'을 용납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이 하나하나 기틀을 잡아가며 시장 확보에 나섰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해외 시장과 부가가치 확보. 1989년 자체 개발한 항생제 세프트리악손의 제조기술을 6년간 한국을 제외 한 전세계 시장에서 사용하도록 하는, 6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1997년에는 노바티스의 마이크로에멀전 제제와 관련 특허 3개를 기술 수출했다. 이는 당시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대 규모였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은 2015년 이후 진행된 7건의 글로벌 라이선스 기술 수출 계약. 당시 체결한 계약 규모는 모두 합쳐 최대 7조원에 달했다. 

북경한미약품은 국내사의 해외 진출 사례 중에서도 성공적인 예로 꼽힌다.


또 1996년 설립된 북경한미약품은 생산, 연구센터 및 영업 등 분야를 하나하나 확충하며 국내 제약업계 중에서도 해외 진출사례 중 성공적인 예로 꼽힌다. 그는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수립하기도 전인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삼고 하나하나 준비를 다져왔던 임 회장은 어린이들이 성인용 의약품을 잘라 먹는 모습을 보며 어린이용 의약품을 주력으로 내세웠다.

더욱이 해외 기술 수출에서도 중국 시장을 기회로 보고 계약금액을 낮춰도 중국내 판권을 지키라는 말을 남기는 등 해외 시장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이가 임 회장이다.

한미약품이 현재 국내에서도 제제를 비롯 국내 제약업계 내에서도 각 분야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이같은 뚝심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제네릭 중심의 국내 제약업계의 판도를 바꾼 하나는 개량신약. 2004년 국내 첫 '아모잘탄'은 업계 내에서도 제네릭에 '플러스 알파'를 더해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제품으로 꼽혔다.

이어 고혈압-이상지질혈증 복합제 '로벨리토'는 한미약품과 사노피-아벤티스가 협업한 첫 사례로도 주목받았다.

이 밖에 '에소메졸', '히알루마', '피도글', '몬테리진츄' 등 제형변경·복약편의성 강화 등을 통해 시장을 노리는 제품은 임 회장의 신약개발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임 회장의 제약분야 헌신은 회사에만 그치지 않았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의 이사장을, 1999년에는 한국제약협회(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을 각각 맡으며 업계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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