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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평론] 제약산업, 불량규제가 가이드라인이 되려면

서울약대 심창구 명예교수, 신약개발 모방에서 창조로

2020-09-25 05:50:57 감성균 기자 감성균 기자 sgkam@kpanews.co.kr

약사공론은 국내 제약바이오 분야 최고의 석학 15명을 초빙해 ‘제약전문평론위원’ 제도를 운영한다. 이들은 9월 첫째 주부터 정기적으로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신약개발 및 마케팅 분야에서 최신의 트렌드는 물론 그간 쌓아온 경험의 ‘정수’를 선보일 전망이다. ‘제약 전문평론위원’은 이종욱 우정바이오 회장과 심창구 전 식약청장이 공동 좌장을 맡아 전반적인 방향을 설정한다. 아울러 강건욱 서울약대 약물학 교수, 강수연 동국제약 제제기술연구소 상무, 강춘원 특허법인 DKP대표, 고성열 미국 NIH 선임연구원,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 김대중 한국다이이찌산쿄 대표, 박일영 충북약대 교수, 배진건 이노큐어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 심유란 스마트바이오팜 대표, 안해영 FDA 전 심사국장이자 현 ABC 대표, 유진산 파멥신 대표, 이광현 일동제약 상무, 정세영 경희약대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한다. <편집자 주>


△모방(模倣)에서 창조(創造)로

우리나라의 제약산업은 혼합, 제조, 복제라는 오랜 세월에 걸친 이미지를 벗고 이제 ‘신약개발’이라는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산업 모델이 모방에서 창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신약개발을 제대로 하는 나라가 몇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사실 이러한 변화는 놀라운 일이다. 

제약산업의 스포트라이트가 신약개발로 옮겨 가고 있는 이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 동안 묵묵히 혼합, 제조, 복제 과정을 통해 다양하고 우수한 의약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국민들에게 제공해 온 선배 제약산업인들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분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의약품을 통한 의료복지는 실현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방을 거쳐 창조로 나가는 것은 새로운 산업이 태동할 때에 일반적으로 밟는 과정인 것 같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바이오 제약산업도 과거의 제약이 그랬던 것처럼 제조와 복제의 과정을 거쳐 창조의 길로 들어서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것 같다.

△제약산업은 제약산업(制約産業)

제약산업은 각종 규제(規制, regulation)에 의한 제약(制約)을 많이 받는다. 의약품은 우선 소량으로 약효가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인체에 안전해야 한다. 이는 사실 모순에 가까운 조건이다. 마치 장독대에 올라 앉은 쥐에게 돌을 던져 장독은 깨지 말고 쥐만 잡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셈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조건들을 법적으로 만족시키려 들다 보니 각종 규제가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제약(製藥)산업을 각종 규제에 의해 제약(制約)을 받는 산업이라는 의미로 제약(制約) 산업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또한 약학의 특성을 규제과학 (regulatory science)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순수과학이나 응용과학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순수과학이 why에, 응용과학이 how에 주목한다면 규제과학은 which에 주목한다. 즉 유효성과 안전성의 수준을 어느 (which) 레벨로 정할 것인가를 여러 가지 인자들을 평가(評價)한 후에 결정하는 규제과학인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regulatory science를 ‘평가과학’ 이라고 부른다. 약학 중에서도 특히 신약개발이 규제과학의 대상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필자는 식약청장을 그만 둔 뒤 2004년 4월 한국의약품법규학회 (2009년부터 FDC 법제학회로 개칭)를 창립한 바 있다

△규제는 가이드라인? 

규제라고 하면 일단 귀찮은 것, 골치 아픈 것, 심지어 불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래서 규제개혁이나 규제철폐를 개혁으로 인식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규제는 불필요하거나 귀찮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규제가 없는 것이 오히려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 도로 위에 신호등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기차보고 일반도로로 달려도 좋다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신호를 지키고, 철로 위를 달릴 때에만 안전하고 신속하게 달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신호등과 철로는 결코 불필요한 규제가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신호등이나 철로가 없거나 고장 났을 때 생긴다. 규제도 마찬가지이다. 규제가 없거나 불량(不良, 엉터리)할 때가 문제인 것이다.

실제로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하려고 할 때 그 의약품을 승인하기 위한 규제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을 때가 제일 난감하다. 예컨대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의약품을 개발하려고 할 때, 오리지날 의약품과의 유사성(similarity)을 판정하는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개발자가 승인에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보면 잘 만들어진 규제는 실은 의약품 개발을 촉진하는 가이드라인(guideline)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규제기관은 승인에 필요한 우수한 품질의 규제부터 만들어 놓아야 한다. 신호등부터, 철로부터 설치해 놓고 자동차나 기차가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불량규제의 탄생배경

필자가 식약청에 근무할 당시 관련 규제들을 검토해 보니 불량 규제들이 적지 않았다. 의미가 불명하고 앞 뒤 문장 간에 모순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서울청과 지방청 간에 같은 규정에 대한 해석이 정반대로 엇갈릴 정도로 문장이 애매한 경우도 있었다. 그 때문에 담당자가 정확한 의미를 묻는 민원인의 전화에 하루 종일 시달리고 있었다.  

왜 불량한 규제가 태어나는가? 그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을 것이다. 우선 우리는 성격적으로 규정을 치밀하게 만드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치밀한 것을 쪼잔하다고 비웃는 버릇이 있다. 게다가 대충 만들어 놓아야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하기 좋다는 공무원 사회의 인식도 있는 것 같았다. 

아직도 규제기관의 규제가 대충 대충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이 만든 시안(試案)은 일정 기간 입법예고를 통하여 민원인의 feed back을 받게 되어 있다. 

문제는 그 기간에 민원인들이 그 규정을 세밀하게 검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 자신들의 업무와 관련이 없어서거나 바빠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규정들은 품질이 불량한 채로 법적 정당성을 얻어 확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규정들은 시행과 함께 여기저기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앞 뒤가 모순된다, 

또는 무슨 말인지 의미를 모르겠다는 등의 불평과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규제기관과 민원인이 처음부터 머리를 맞대고 완벽에 가까운 규정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규제기관의 자세부터 바뀌어야 한다. 규제 제정의 주도권은 규제기관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민원인들을 일정 기간 호텔에 모셔 놓고 완벽한 규정이 완성될 때까지 귀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상상까지 해 보았다. 

△탁상행정도 필요하다

규정은 원칙적으로 과학에 근거해서 제정되어야 좋다. 그러나 모든 규정을 과학적 증거나 논리에 의해 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규제는 ‘탁상행정’으로 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에 움츠린다. 

그러나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어떤 의약품의 유효기간을 일률적 (예, 2년)으로 정해 놓는 것은 과학적으로 별 근거가 없는 일이다. 

의약품이 종류에 관계없이 동일 기간 약효가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거가 없다고 해서 기간 제한 없이 약이 사용되도록 내 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탁상행정’으로 2년을 정해 관리하는 것이 그냥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는가? 그런 탁상행정은 불가피 할뿐더러 잘 하는 일인 것이다. 

△국제 규제기구에서의 주도권

지금은 범사를 글로벌(global)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특히 신약개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과거의 우리는 선진국에서 만들어 놓은 규정을 따라가기도 힘이 들었다. 

우리가 국제 표준 규정을 쉽게 따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의 과학적 실력을 선진국의 수준 이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규격을 정할 때에 우리의 현실이 잘 반영되도록 국제규격 제정회의에서 우리의 발언권을 높이는 일이다. 

수은 함량이 높은 일본 쌀이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식품공전(Codex) 회의에 일본 대표가 참석하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선진국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을 국제 규격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유효성과 안전성 면에서 그렇게까지 높은 수준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렇다. 그래 놓고 자기네들의 의약품만 국제적으로 통용되어야 한다고 규정을 정한다. 

순도 99%는 안전하고 98.5%는 안전하지 않다는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99% 이상만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도록 정하는 것이 그런 사례이다. 낮은 과학 기술력 때문에 그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후진국의 의약품은 결국 국제 시장에서 퇴출되게 된다. 

선진국들이 과학을 빙자해 무역장벽을 쌓는다는 비판이 제법 설득력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아마 생동성 시험도 그런 사례의 하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쁜 소식이 있다. 우리나라 식약처가 2016년 ICH(의약품국제조화회의)의 정회원이 되는 등 최근 의약품 관련 여러 국제규격 제정 회의에 참여하여 발언권을 갖게 된 일이다. 우리나라의 규제기관의 수준이 마침내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되었음이 국제적으로 공인되었음을 반증하는 일일 것이다. 신약을 개발하는 우리나라 체면에 합당한 일이다.   

△결국 규제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쁜 규제(법규)가 나쁠 뿐이다. 제일 나쁜 것은 아무런 규제(법규)가 없는 상황이다. 법규는 명료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으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신약개발에는 신약을 연구 개발하는 과학자만이 아니라, 좋은 규정들(평가 기준)을 미리 만들어 놓는 규제과학자들의 역할도 매우 필요하다. 관련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서 세계 최초의 신약이 나올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규는 꼭 과학적 근거로만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 탁상 위에서 정할 수도 있다. 규정은 또한 국제적 이권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그래서 국제 규제 관련 회의에서 발언권도 확보해 야 한다. 과학을 빙자한 무역 장벽 설정에 속지 말아야 한다. 

법규는 되도록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 바쁘다고,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불성실하게 만든 나쁜 규정은 두고 두고 신약개발을 괴롭히고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규제기관이나 민원인이나 모두 힘을 합쳐 우수한 품질의 법규를 만들어 놓고 적용해야 한다. 

좋은 법규, 좋은 규제는 관련 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신약개발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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