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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약사저널]약학계는 왜 사회약학이란 용어를 꺼렸을까

[사회약학]리병도 약사, 우리나라 사회약학 도입의 역사 <2>

2020-11-21 06:00:00 감성균 기자 감성균 기자 sgkam@kpanews.co.kr

[BOX]
우리나라보다 앞서 국제적인 사회약학 세미나는 1980년 헬싱키에서 1회를 시작해 격년마다 전 세계를 돌며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사회약학이란 분야의 태동을 어떻게 될까? 

김종국 교수에 따르면 1970년대를 전후로 약학과 사회학의 접목이 시도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약학(Social Pharmacy)이 새롭기는 했지만 당시 정치상황 하에서는 쓰기가 망설여지는 단어였다고 한다. 

1980년대 당시는 제5공화국 시기여서 표현의 자유도 상당히 위축돼 있었다. 따라서 전국민의료보험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Social'이란 단어 자체가 사회주의 혹은 공산권 국가의 의약품 분배제도를 연상할 수도 있다는 지적에 약학계에서는 ‘사회약학’이란 용어 쓰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처음 사용하는 용어로 참신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대한약사회를 비롯 약계 전체의 당면과제로 등장한 문제들을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학술적으로 접근한다는 의미로 '사회약학'이란 말이 우리나라에서 서서히 쓰이게 됐다. 

그 당시 약업계에는 여러 가지 주요쟁점들이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약계 내에 이를 다룰 논객이나 전문가 풀을 갖추고 있지 못해 쟁점이 생길 때마다 보건의료 및 약사제도에 대한 전문가를 찾아내기도 힘들었고 자체적으로 양성하지도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던 중 이런 문제의식을 좀 더 공론화했던 계기가 됐던 것이 1984년 11월 27일에 대한약학회와 대한약사회가 공동주최로 'Dr. Albert I. Wertheimer 초청 특별강연회'를 힐튼호텔에서 개최한 것이었다. 

Wertheimer교수의 '의료보험에서의 약가보상과 약국조제수가'와 '미국의 의약품시장동향' 특강은 사회약학을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소개하는 계기가 됐다. 

약학 전공 학생들은 이화학적 실험을 하지 않고도 약학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는 약과 관련된 여러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 관심 있는 약계인사들이 전공에 상관없이 정책입안에 참여하고 있었고 논객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사회약학의 초창기인 당시로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가급적 많이 참여하는 것이 사회약학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길이었다. 

1985년 약사공론 특집 '사회약학에 접근 한다' 게재
또한 전국민의료보험, 의약분업, 한의사와의 한약분쟁, 의약품의 유통, 약사정원, 약대 6년제 교육, 의사·간호사 등 타 의료분야와 업무영역 설정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았던 당시 상황에서 약업계가 사회약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거는 기대도 매우 컸었다.
 
그리고 사회약학을 약계에 알린 또 하나의 계기는 약사공론이 1985년 신년특집으로 '사회약학에 접근 한다'는 제하로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이어서 '의약품의 사회성 규명으로 약사직능 향상'이라는 Wertheimer 교수의 특별기고문이 게재되면서 약계에 사회·경영약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김종국 교수는 Wertheimer교수에게 한국의 사회약학 전공자 육성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고 지원을 약속 받았다. 

미래지향적으로 약사의 직역을 확대하고 직능을 신장시키기 위해 사회약학의 조기도입과 활성화를 위해 관심 있는 사람은 많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1985년에 서울대 유병성교수는 약대 물리약학연구실에 대학원생으로 있던 이의경 교수를 인문·사회계통의 연구에 흥미가 있다면서 사회약학 유학코스에 추천했다.

이의경 교수는 'Work Sampling법을 이용한 병원약제부의 인력요구량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1987년에 석사학위를 받고 국내에서 사회약학 관련 논문을 쓴 첫 번째 약사가 됐다. 

사회약학에  관심이 있는 젊은 학자들에게 계속 공부하도록 권유하는 과정에서 홍성선 약사가 1987년에 장학금을 받고 미네소타대학의 Dr. Wertheimer 연구실로 유학을 갔다. 

이의경 교수도 부군과 함께 Wertheimer교수의 제자가 학과장으로 있던 아이오와대학교의 Pharmaceutical Socioeconomics Dept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사회약학을 공부한 1세대들은 지난 10∼20년 동안 여러 분야에 흩어져서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이 분야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교육계는 매우 보수적이어서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새로운 분야가 제도권으로 진입하려면 확실한 사회적 요구는 물론 경계를 넘기 위한 엄청난 추진력과 주변의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 세대 이상 시간이 걸렸다. 

초기 국내엔 사회약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았고 이후 많은 사회약학 전공자들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다시 미국으로 떠나가는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 2001년 숙명여대 임상약학대학원에 사회약학 전공을 개설하고 이 교수를 임용했었으나 사회적 무관심과 인지도 미비로 최소 수강생이 등록하지 않아 모든 것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던 것도 척박한 당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하나의 사례였다.



리병도 약사. 참좋은약국 대표, 전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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