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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파동 후유증 겪은 한해…헌법소원·대법원 '송사'

[창간 50주년 특별기획] 역사를 담다, 약사를 담다<27> 1994년

2018-05-14 06:00:12 강혜경 기자 강혜경 기자 hgkang@kpanews.co.kr


1994년은 '93년 시행된 한약파동 후유증이 고스란히 나타나던 한해였다.

약사의 천부적 직능으로 인정돼 오던 약사의 한약조제를 자격시험이라는 시험을 통해 얻어내야 한다는 데 대해 약국가가 크게 반발했으며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한약사제도가 탄생했다.

약사들은 "국민보건을 위해 그리고 절대적으로 상처입은 약사한약에 대한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한약을 수호해야 한다"며 한약조제 자격시험 거부를 결의하기도 했다.

약사회는 개정 약사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가 하면 폐문 사태로 인한 형사고발로 대법원까지 가게 된다.

또한 대한약사회와 서울지부가 나란히 보궐선거를 진행, 정종엽 대한약사회장과 한석원 서울지부장이 새롭게 선출됐다.

약국가에서는 체인화와 더불어 대형화 바람이 불었다.

보사부가 보건복지부로 변경됐으며 KGMP를 통해 제약산업이 시설 면에서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한약조제 기득권 박탈로 전국 회오리

당시 신문에서 한약파동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발생됐으며 이는 약사사회에서 대란으로 기록되고도 남을 사건이라 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보사부가 93년 3월 약사법 시행규칙을 손질하면서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인 약사법 시행규칙 제11조 1항 7호인 '약국에는 재래식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어 깨끗이 관리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한 것이 엄청난 후유증을 낳은 한약파동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

보사부는 약국의 재래식 한약장철거조항 삭제에 따른 파동이 확대되자 문제 해결을 위해 약사,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소비자단체 대표와 보건전문가 등 23명으로 구성된 '약사법 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수차례에 걸친 회의와 공청회 의견을 종합, 한약사제신설, 의약분업, 업무개시 명령권발동, 한약조제 자격시험 등의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 약사법 개정법률안을 9월14일자로 입법예고했다.

신문은 '모법의 개정에 따라 한약사라는 기형아가 탄생하게 됐다'며 '한의사들은 약사들의 한약취급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약사회가 극구 반대해 온 한약사제의 신설을 관철 시키기는 했으나 이같은 결과가 머지 않아 실시될 의약분업시 자신들의 입지를 크게 좁혀놓은 결과가 되었다'고 예측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정된 약사법이 6개월 후 실시를 전제로 94년 1월7일 공포됨에 따라 하위 법령인 약사법 시행령은 7월8일자로, 시행규칙은 7월11일자로 각각 공포됐다.

하위법령 개정에 따라 약사들은 한약조제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한 자격시험을 치뤄야 하며 한약사배출을 위한 요건도 차례로 배출됐다.

약사들의 한약조제 자격시험은 두가지로 분류됐다.

먼저 기득권이 인정된 약사들은 96년 7월 이전까지 두번에 걸쳐 실시하는 한약조제자격시험에 합격하지 않아도 이 시점까지는 한약을 취급할 수 있도록 했으며, 두번째는 기득권을 인정받지 않은 약사라 할지라도 내년부터 두번에 기회를 줘 실시하는 조제자격시험에 합격하면 한약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즉, 한약을 취급해온 약사들에 한해 일정기간 기득권을 인정하는 선과 두번의 자격시험을 통해 한약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교모한 방법을 동원해 보사부가 약사들의 불만해소에 총력을 기울이게 됐다.

보사부는 94년 국정감사 보고자료를 통해 한약을 직접 취급한고 있다고 신고한 약국은 전체 2만125개 약국 중 서류확인 등을 거쳐 최종 확정한 9276명으로 46.1%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약사회는 개정 약사법이 약사의 권익을 침해하는 중대한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 사상 초유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된다.

약사회는 "기존 약사들의 한약조제기득권을 박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위헌"이라며 "약사들에 대한 한약조제 기득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헌법소원을 진행하게 됐다.

약국가에도 "헌법소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시험을 거부하겠다"는 의견이 팽배해지게 됐다.

신문에는 '4년의 약학대학 수업과 국가고시를 거쳐 모든 의약품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국가로부터 공인받은 약사들이 의약품의 하나임이 분명한 한약에 대해 그 조제를 위해서는 또 다른 자격시험을 치뤄야 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발생했다'ㅁ며 '국민보건을 위해 그리고 절대적으로 상처입은 약사한약에 대한 자존심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한약을 수호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사명 앞에 놓여지게 됐다'고 보도됐다.

이후 보사부가 7월8일자로 '한약 처방의 종류 및 조제 방법에 관한 규정' 제정을 고시하면서 한약조제권을 '1백방'이라는 제한 아래 취급해야 하면서 약사들의 반발은 더욱 커졌다.

이같은 약사들의 궐기와 집단휴업이 차후에는 업무개시 명령권이 새롭게 마련, 벌칙금이 한층 강화되기도 했다.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는 한약파동이 절정에 달하던 지난해 9월25일 전국 약국가의 2차 폐문이 독점금지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행위라며 대한약사회에 대해 사과공고를 각 일간지에 게재토록하는 시정명령과 더불어 김희중 당시 대한약사회장 직무대행과 사무총장, 한석원 서울지부 직무대리를 각각 형사고발했다.

약사회는 고발 직후인 10월25일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한달만에 신청이 기각돼 결국 공정거래위를 상대로 서울고등법원 특별6부에 '시정명령 등 취소청구'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대약의 청구소가 '이유없다'는 내용으로 원고청구 기각판결을 내렸으며 약사회는 대법원 상고를 통해 "약국 휴업은 회원자의에 따른 일시적인 약사직능을 중단한 것이지 담합이나 회원구속 등의 불공정 행위는 아니다"라는 점을 거듭 천명했다. 

한편 한약학과 설치 유치를 놓고 약사회와 한의사회가 힘겨루기를 벌였다.

3월 경산대와 경희대 등 전국의 11개 대학에서 한약학과 설치를 교육부에 신청했고 교육부는 관계부처인 보사부의 의견 조회를 거쳐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보사부는 8월 말 교육부의 의견조회에 한의과대학과 약학대학을 함께 두고 있는 경희대, 원광대, 전주우석대 등 3개 대학에 정원을 120명으로 한 한약학과의 신설을 추진하되 약대정원 범위 내에서 조정토록 한다고 답변함으로써 한약학과의 신설을 확정했다.

대한약사회장에 정종엽, 서울지부장에 한석원

한약파동의 후유증으로 권경곤 회장과 정병표 지부장이 전격사퇴함에 따라 대한약사회와 서울지부가 나란히 보궐선거를 치렀다.

대약선거에서는 정종엽 회장과 김희중 회장직무대리가 경합을 벌여 유효표 271표 중 175표 대 98표라는 표차를 보이며 정종엽 회장이 선출됐다.

서울지부장에는 3표차로 한석원 신임 지부장이 선출됐다.

보사부, 지금의 '보건복지부'로

보사부는 12월3일 정부의 조직개편작업에 따라 보건복지부로 명칭이 변경되고 국민연금국과 보험국을 통폐합하며 1개의 정책과를 없애는 것을 전제로 한 기구 개편 작업 등이 진행됐다.

약국 가격 자율화 실시, 체인화, 대형화 등 '추세'

94년 2월15일 경제 행정규제 완화 조치의 일환으로 보사부의 의약품 가격 표시 및 관리기준 개정이 시행되면서 약국의 가격 자율화가 실시됐다.

고시 제14조 제2항 제2호은 '약국 등 판매업자는 정당한 이유없이 구입 가격보다 낮게 판매하는 등 부당한 방법이나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인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했지만, 이같은 규정은 근본적으로 제로마진 선까지 내려 무한경쟁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개국가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약국가는 "개정된 의약품 가격표시 및 관리기준은 요소요소에 가격질서를 확립시키는 데 저해요인이 되는 문제점이 내재돼 있어 과연 가격자율화가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를 의심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개방화와 세계화 바람이 불며 약국가에도 위기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약국들은 약국 개방이라는 변화를 갈망하는 욕구에 부응하면서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체인에 눈을 돌리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약국의 변신을 부르짖으며 자생적으로 탄생한 국내 체인 약국 업체가 10여개를 넘어서며 미래사회 욕구 증폭에 편승하는 약국도 늘어나게 됐다.

당시 두드러졌던 현상 중 하나는 대형약국의 개설 붐이었다.

과거 부정적인 시각의 대상이 됐던 대형약국을 '시대 흐름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대두되며 100여개 가량의 대형약국이 생겨났다.

개설지역도 시내 중심가나 주택을 가리지 않고 들어섰으며, 규모 면에서도 100평 이상의 초대형 약국이 속속 등장하게 됐다.

의약품 방송광고 금지, KGMP 정착

방송위원회는 방송광고 규정을 정비하면서 의약품 방송광고를 대폭 금지시키는 조치를 단행해 제약업계 일대 파문이 불거졌다.

의약품 오남용에 대한 소비자 목소리에 방송위원회는 신장약-심장약-간장약 등 대중광고 대종약효군의 방송광고를 금지시킨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하지만 제약과 약업계에서는 전문가의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금지 조치를 강행하려 했다는 점에서 반발하기도 했다.

94년에 KGMP가 전면 의무화되며 제약산업이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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