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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회 수장의 구속 치욕적 상처의 기록...'한약파동'

[창간 50주년 특별기획] 역사를 담다, 약사를 담다<26> 1993년 송년특집 절반 배정

2018-04-24 12:00:16 한상인 기자 한상인 기자 hsicam@kpanews.co.kr


1993년은 약사와 한의사뿐만 아니라 보건업계, 더 넓게는 전 국민적으로 화두가 되었던 한약파동이 일어난 해다.

한약과 관련해 1월 점화된 불꽃이 1, 2차 전국 약국 동시 폐문, 당시 김희중 대한약사회장 직무대행 구속 등 12월까지 이어지며 약사사회가 소용돌이 쳤다.

93년 1월 30일 보사부가 ‘약국에는 재래식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어 이를 청결히 관리할 것’이라는 조항을 삭제한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발표하며 한약파동은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보사부는 당시 약국이 한약을 당연히 취급하고 있었으므로 사문화된 규정이라 판단 삭제했지만 한의대생들의 투쟁으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 3차례에 걸친 대한약사회의 임시대의원 총회, 6월·9월의 전국약국 동시 휴업, 권경곤 대한약사회장의 사퇴와 김희중 직무대행의 34일간의 구금, 통과된 약사법으로 인한 한약사 제도의 탄생은 약사 역사에 기록될 치욕으로 자리잡는다.

93년 송년호에는 52면 중 광고 20면을 제외한 32면 기사가 제작됐는데 이 중 한약파동 관련 기사만 16면에 달할 만큼 각계의 움직임과 사건의 진행상황에 대해 상세히 정리하고 있다.

‘약권대란 끝없는 도전’ 당시 한약파동을 연속해 담은 송년특집의 제목이다.

송년특집은 먼저 12월 의약분업, 한방분업을 실시하기로 하며 한약사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정부의 약사법 개정안을 최대의 악수로 규정하고 백년대계를 접어두고 불끄기에만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한약 관련 해법에 대해 졸속 처방에 불과할 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문제가 더 크게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9월 14일 진행된 ‘여의도궐기대회’와 6월과 9월에 발생한 전국 약국 동시 휴업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했다. 

‘여의도궐기대회’에 대해선 약사회 창립 이래 3만회원이 분노를 표출하는 장이었다고 평가하며 40년 사상 최대 운집한 약사들이 잘못된 국민보건정책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는 의지를 표출시켰다고 평가했다.

또한 9월 24일 결행된 전국 약국 동시 휴업에 대해서는 정치권, 여론, 경실련, 한의사 등에 밀려 사면초가에 몰린 약사들의 선택 없는 절규였다며 조제권 침탈에 따른 약사 최후 진술과도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9월 전국 약국 동시 휴업과 관련해 발생한 권경곤 대한약사회장 사퇴와 김희중 직무대행의 구속은 전무후무한 치욕적 상처로 기록된다. 약사회의 대표를 단 하루 동안의 약국 휴업을 원죄삼아 구속수사에 장기 수감을 한 것은 유례없는 비정치적 보건단체 탄압으로 손꼽힌다는 것. 검찰은 당시 약사회 수장이었던 김희중 직무대행을 34일간 구금했고 서울형사지방법원은 ‘공정거래법상의 독점금지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결국 12월 7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한약파동으로 인해 대한약사회는 93년 한 해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임시대의원총회를 기록한다. 40년 회의 역사상 최대위기였지만 3월 개최된 첫 임총서 신중히 대처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첫 임총서 한약파동 시발점이 된 한의대생들의 수업거부 사태를 과소평가했으며 당시 권경곤 회장에 대한 대의원 일각의 불신, 회비인상문제 등 내적 문제로 한약파동에 대한 강도 높은 톤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 이후 6.9 ‘청년회원 회관 집결 밤샘 농성’ 등 3개월간 추이를 감시하며 의견을 모았다.

경실련의 한약분쟁조정위를 통한 중재에 대해서도 위상 격상을 노려 언론과 합작했으며 미합의 내용을 마구 발표한 사기극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건약과 청년약사들의 일선 부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시 신문은 약사회 외곽에서 브레인과 행동역할에 충실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약파동은 약국의 PC통신의 사용률을 높이는데도 기여했다. 신문은 컴퓨터를 통해 부당성 지적과  정책제시까지 약사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고 매스컴과 정부에 분노를 바로 전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약대생들도 수업거부, 단식 투쟁, 집회 참석 등 극한 투쟁에 동참하며 의약분업·의료일원화에 총력을 다했다. 하지만 비교적 늦게 시작됐고 교수, 약대생, 약사회가 서류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을 지적됐다.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 강화를 통한 생산·병원약사와 해외약사들의 결집, 응원과 늦었지만 의사들의 의료일원화에 대한 인식으로 ‘약사주장’을 인정한 부분은 큰 수확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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