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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전쟁터, 약사도 아픔을 공유한다

[창간특집=사람사는 곳, 동네약국] ④노량진 학원가

2019-07-10 12:00:23 이광민 기자 이광민 기자 gwangmin1428@kpanews.co.kr

[창간특집-사람사는 곳, 동네약국]

전국 약국 2만여 곳. 약국은 전국에 골고루 퍼져 국민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한 곳에서 2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며 동네 주민들과 소통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하고 지역사회에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이 되기도 한다. 수유동 수유북부시장, 방송의 메카 ‘상암동’, 중국인 거리 구로동, 노량진 학원가까지 각 지역을 대표하는 동네 골목길을 찾아 약사들이 말하는 지역의 특색과 이를 위한 약국의 변화는 무엇이었는지 가감 없는 이야기를 담았다.

①수유동 수유북부시장, 6평 약국서 지킨 60년 세월
②방송의 메카 상암동, ‘1분 1초’가 바쁜 사람들
③구로동 중국인 거리, 중국어 POP통한 복약지도 필수
④노량진 학원가, 청년이 떠난다 ‘아프니까 청춘’ 우울함 투영


노량진초등학교 뒤쪽은 하숙집과 고시원 등이 밀집한 동네다. 하지만 사람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니 고시원에 붙여진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50% 할인' 그 길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네 자체가 죽은 것 같이 고요했다. 여기가 바로 수많은 공시생과 고시생, N수생의 성지, 공무원의 산실이라 불렸던 노량진의 모습이다.


학원가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는 그 누구도 없었고, 학원에서 나오는 수강생도 없었다. 

"요즘에 누가 노량진에서 공무원 준비를 해요. 어차피 인터넷 강의를 듣는 건데 굳이 노량진에서 들을 필요는 없죠. 그냥 편한 공간에서 들으면 되는 문제죠. 무슨 돈이 있다고 노량진에서 생활하면서 인터넷 강의까지 들어요."

길에서 만난 공시생의 첫마디였다. 그녀는 한 손에 테블릿 PC를, 다른 한 손에는 공무원 문제집을 들고 있었다.  

◇노량진의 호황과 몰락
노량진에 학원가가 자리 잡기 시작한 건 1970년대 말부터다. 당시 정부는 도심지의 인구밀집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입시학원들을 4대문 밖으로 분산시켰다. 그러자 대형학원 중 하나였던 대성학원이 노량진동으로 옮겼고 뒤따라 다른 대입 입시학원들도 이 일대로 몰려들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수많은 기업이 무너졌고, 대규모의 넥타이 부대가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30대 대기업 중 16곳과 26개의 주요 은행 중 16곳이 무너졌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기에 노량진은 반전을 맞이했다. 외환위기로 인한 대규모의 취업난으로 대학 졸업 예정자들과 졸업자들은 직업의 안전성이 높은 공무원 시험에 몰렸다. 그러자 노량진에는 자연스레 공무원과 고시임용시험을 준비하는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연간 5조원이 드나들 정도의 큰 시장이었던 노량진 학원가. 그 근간을 이루던 청년들이 빠지자 노량진은 급격히 쇠락했다.

노량진의 청년인구 감소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를 살펴보면, 2012년 서울 동작구 노량진1·2동의 20~30대 인구는 5만319명이었다. 그러나 △2013년 5만145명 △2014년 4만8976명 △2015년 4만8021명 △2016년 4만6900명 △2017년 4만5997명 △2018년 4만5850명으로 해마다 줄었다.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약 10%에 가까운 청년이 노량진을 떠난 셈이다. 

◇청년의 명과 암이 공존하는 노량진 약사의 삶
이 동네에서 24년째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S약국 약사를 만났다. 

노량진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추억을 회상하듯 말했다. 

"노량진은 재수생의 거리였어요. 그때는 하숙생들이 많았죠. 최근에는 추세가 변해서 지금은 경찰직과 행정직을 비롯해 다양한 공시생과 임용고시생들로 구생돼있어요. 근데 그것도 얼마 없어요. 인터넷강의가 워낙 잘 형성돼있어서...사람이 많이 빠졌죠." 

노량진을 떠났다가 다시 찾아온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작년에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중년의 여성이 기억에 남아요. 유독 힘들어하셨죠. 어느 순간부터 약국에 오시지 않더니 얼마 전에 들르셨어요. 결국 임용고시에 합격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잘 돼서 떠났다가 오시는 분들이 오면 기분이 좋죠. 기억에도 남고.."

노량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의 삶에 대해 묻자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저희는 오래보면 좋지 않은 거예요. 오래 보지 않으면 잘 돼서 떠나신 분들이죠. 20대라는 황금기를 노량진에서 보내는 청춘이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또 한편으로는 어른이자 기성세대로서 책임을 느끼고 슬픔도 느끼죠. 이 점이 타 지역의 약사와는 다른 노량진 약사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어요."

◇청춘이 빠진 거리, 생기를 찾고자 하는 물결
노량진에서 약국을 개업한지 2년째인 약사를 만났다.

"실제 노량진에 공시생들이 많이 빠져서 지역 활기가 사라진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빈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해 관람객들이 차지했어요."

노량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민을 거듭해 답했다.


"노량진 공시생을 세상과 이어주던 육교가 없어졌죠. 노량진을 상징하던 것인데 말이죠. 뭐 어쩔 수 있나요. 공시생이 많이 사라진 건 사실인데..오히려 지금이 더 좋아요. 다양한 사람들이 노량진을 찾으니 활기찬 분위기가 된 것 같아요."

이어 "실제 제 주변에서도 약국을 폐업하고 떠나갔다는 약사님들이 많아요. 공시생들이 빠져나갔으니 경제도 침체된 탓이죠. 기자님도 보셨다시피 건물에 공실이 많잖아요"라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약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서울지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 동작구의 약국 수는 2011년 187곳을 정점으로 △2017년 180곳 △2018년 169곳이었다. 서울 서초구의 경우 △2011년 236곳 △2017년 234곳 △2018년 230곳이었으며, 서울 관악구의 경우 △2011년 214곳 △2017년 210곳 △2018년 191곳이었다. 이를 볼 때, 서울 동작구는 서초구와 관악구에 비해 약국 폐업의 감소폭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량진 뉴타운으로 인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거란 생각으로 이에 대해 물었다.
 
◇변화의 격동기, 약사가 꿈꾸는 미래
"'노량진 뉴타운'은 저희와 거리가 먼 얘기에요. 실제 노량진 뉴타운은 장승배기역 부근에서 진행되는 거고 저희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죠.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노량진도 활성화되고 눈부시게 발전을 하지 않을까요?"

노량진의 격동기를 경험한 N약국의 약사를 만났다. 


약국에 문턱을 넘는 순간, 수많은 보호대와 파스, 영양제가 보였다. 

"앞 쪽에 비치해 놓으신 품목들은 가장 잘 팔리는 품목인가요?"

"과거에는 공시생들이 주로 찾던 제품이었죠. 영양제, 인공눈물, 비타민, 피로회복제, 파스, 보호대 같은 것들이 엄청 잘 팔렸어요. 요즘에는 외국인 노동자나 인부, 지역 어르신들에게 주로 나가고 있죠."

◇과거 비해 매출 20~30% 하락
민감할 수도 있는 매출에 대해 묻자 미소를 지었다.

"학생들이 많았던 시기와 비교해서 매출이 20~30% 감소했다고 봐야죠. 그래도 뭐 어쩔 수 있나요. 돈을 바라보고 약국을 운영하는 건 약사가 할 짓이 아니죠."

그리고 약사로서의 자긍심을 강조했다.

"노량진 약국을 찾는 사람들 아픈 사람입니다. 신체와 정신만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도 아픈 사람들이죠. 집에서 떨어져 혼자 생활하기 때문에 외로움이란 병을 가지고 있고,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병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노량진 약사는 그들의 사소한 이야기라도 들어주고 슬픔을 닦아주며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노량진에서 만난 모든 약사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다.


오후 6시. 학원가 뒤에 자리한 음식 거리를 찾았다. 거리는 횡 했다.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대였기에 사람들로 붐빌 것이라 예상해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먹는 사람이 없으니 음식 냄새 또한 나질 않았다. 거리는 한산했고, 기운은 침체됐다. 


취재를 끝내고 노량진역으로 향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한 남성이 공무원 학원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그가 보는 곳은 전쟁터의 한복판, 노량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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