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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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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 간부의 안개 속 일탈

<61> 김승옥 단편소설 『무진기행』

『무진기행』을 쓸 무렵의 젊은 작가 김승옥
한국문학에서 탁월한 작품으로 꼽히는『무진기행』은 1964년 《사상계》에 발표된 김승옥(1941~)의 단편소설이다. 당시 그는 어린나이의, 서울대 불문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제목에 인용된 무진(霧津)이라는 도시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다. 그는 우리 문단에 탁월한 문체와 구성으로 감성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이 소설은 1960년대부터 급격히 진행된 산업화에서 비롯된 사회병리적 현상들을 꿰뚫고 있다. 배금사상, 출세지향, 도시화 문제 등을 안개가 자욱하게 낀 무진을 배경으로 허무주의적인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1967년 개봉한 김수용 감독의 윤정희, 신성일 주연 「안개」도 원작이 바로『무진기행』이다.

소설 속 나는 나이 서른셋으로 회사 간부다. 처가의 도움으로 곧 전무로 승진될 사람이다. 그는 잠시 휴가를 내어 무진으로 내려간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의 참담한 과거가 얼룩져있고 어머니의 묘가 있다. 짙은 안개는 바로 자신의 '쌩얼'이다.

그는 무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문학소년이었던 중학교 교사 박은 그를 좋아한다. 출세한 세무 공무원인 조는 그를 비슷한 부류로 생각한다. 음악선생인 발랄한 처녀 하인숙은 그에게서 풍겨나는 도회적 이미지에 서울의 풍류를 느끼고 그를 유혹한다. 그녀는 그와 단둘이 있을 때 무진에서 자신을 구해 줄 것을 간청한다. 그는 그녀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폐병으로 요양했던 집에서 하인숙과 정사를 벌인다.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끝내 말하지는 않는다.

김승옥 단편소설집『무진기행』표지
다음날 아침, 아내로부터 온 전보는 과거에 함몰돼 일탈해있던 '나'를 일깨운다. 하인숙에게 쓴 사랑의 편지를 찢어 버린다. 그는 영원한 기억의 너머로 무진을 묻어 두기로 결심한다. 심한 자괴감을 느끼며 서울로 돌아간다.

이 소설 속에는 특이하게도 주인공 윤희중이 제약회사의 간부로 나온다. 그는 무진으로 내려가면서 버스 안에서 이런 공상을 한다. 제약회사에 오래 근무를 해서인지 신약개발에 관한 것이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海風)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地上)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본문인용

무진으로 향하는 주인공은 호흡이 매우 긴 문장을 통해 독특한 상상력을 펼친다. 햇볕과 공기와 소금기 먹은 바람을 원료로 수면제를 합성한다니! 수면제가 바람처럼 상쾌한 약이 될 거라는 공상. 그리고 자신이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임원이 된다는 상상이다. 주인공 '나'는 4년 전에 일자리를 잃고 무진에 내려왔었다. 경리일을 보고 있던 제약회사가 좀 더 큰 다른 회사와 합병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무진으로 내려왔던 아픈 추억도 있다.

윤정희, 신성일 주연 영화 「안개」포스터
소설의 배경이 되는 무진의 안개는 혼미스러운 주인공 나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상징물이다. 무진에서 만난 여선생에게 썼다가 찢어버린 연애편지가 찡한 소설이다. 주인공 나는 과거를 묻어버린 채 무진을 떠나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는 모처럼 다시 돌아온 옛 추억의 고향인 무진의 거리를 걷다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 읍내 술집여자를 보게 된다. 순경에게 무슨 약을 먹었냐고 물어본다. 순경은 "저런 여자들이 먹는 것은 수면제 따위로 떠들썩하게 연극이나 하는 게 아니고 바로 청산가리를 먹는다"고 시니컬하게 말했다. 막 말하는 순경의 입을 통해서 청산가리가 아주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청산가리는 씨토크롬 옥시다제라는 효소를 불활성화시켜 세포내 산소공급이 되지 않아 근육마비, 호흡마비를 일으키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독약이다.

비록 오리무중의 혼미한 무진이지만 인간적 냄새가 있다. 근대적인 삶을 살아내야 하는 주인공 '나'는 서울을 벗어날 수 없어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처지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 이 시대 나에게도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그러나 작가는 도시를 비판하기 위해 무진을 낭만화하지는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다.

잠시 동안 안개 속에서 옛 시절 추억과 섞여 혼미했으나 제 정신을 차려 현실로 돌아간다. 『무진기행』은 내용면에서 주인공이 제약회사 간부로 설정돼있다. 빛과 공기와 소금으로 수면제를 합성하는 상상 장면과 모처럼 고향에 와서 보게 된 청산가리에 의한 자살장면 등이 소설에 등장한다. 약사와 같은 약과 독을 다루는 사람들에게서도 관심을 끌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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