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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7 (월)

우황청심원

가는 걸음걸음 놓인 희망을 사뿐히 즈려밟고 나아가길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 사회약학실 손현순 교수

한마디 말이 참 많이도 고팠었나 보다. ‘당신이 옳다’는 책 한 권을 단숨에 읽어낸 걸 보니. 봄기운이 성큼 다가와서일까 라디오 음악방송 디제이의 선곡도 포근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창밖 양재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본다. 과학이니 신기술이니 하며 세상 참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별 영혼없는 듯한 말들을 내뱉으며 살고 있지만, 그래서 우리가 더 행복해졌는지 더 여유로워졌는지를 따져 묻는 건 철없는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말 정도로 치부하며 산다.

일상의 고단함이 어디에서 연유한 건지 되짚어보거나 눈물과 고통을 지고 가는 누군가의 마음을 공감해 줄 심리적 여백이 너에게도 나에게도 없어서,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이라는 명제에 일찍이 동의해 버리는 것이 차라리 더 현명한 현대인으로 사는 방법이라는 조언을 쉽게 수긍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한 개인이 삶을 살아내는 데 꼭 필요한 것은, 과학이나 신기술로 만들어낸 가시화된 문명적 요소들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가치가 자신과 타인에게 인정받는 정서적지지 내지는 안정감이라 한다면, 더 살기 좋아졌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이 아프고 많은 약을 먹으며 의료서비스에 의존하는지 약간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그저 더 오래 살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결합하여 옛날보다 더 오래 살게 된 현상만 가지고 보건의료계의 수많은 매체들이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보도하고 있는 의료비 증가, 약품비 증가, 보건의료시장의 확대와 같은 흐름을 모두 다 설명하기는 옹색하다.

게다가 의료에 대한 의존도는 이토록 커졌건만 정작 의료에 대해 충분히 만족은 하고 있는 건지 냉정하게 물어봐야 할 문제이다.

지금의 의료서비스 이용이나 의약품 사용이 너무 많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보건의료영역이 당초의 순수함을 벗어난 지 오래고 가치판단의 중심으로 비집고 들어온 산업적 경제적 관점이 일상화된 기조가 된 임상현장에서도 과잉소비 경향을 바꾸기란 미션임파서블 아닌가 싶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약사면허증을 손에 들고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을 축하하는 졸업식 풍경을 보면서, 저 약사면허증이 각자의 삶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 행여 독이 되지 않도록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배경을 설명하다 보니.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장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에 선 졸업생들이 그간의 노력으로 꿈같이 이뤄낸 약사면허증을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본디 사회에서 부여한 의무는 소홀해 버린다면 그것은 곧 독이라는 것을 힘주어 말하려 하다 보니.

약사면허증이 약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읽어내고 그것을 정확히 도움주기 위해 노력하는 약사의 자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파해도 좋을까? 그러러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읽어내고 적절히 조치한다는 것은 약대 교육과정에서 주로 공부했던 방식, 즉 아픈 사람을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비정상적 상태인 질병으로 정의하고 그로 인한 증상을 경감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약을 잘 선택해서 잘 복용토록 하는 간단명료한 방법만으로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데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 아프다는 건 참 많은 의미를 내재하고 있고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이라 불리는 것들이 때로는 특별한 신체적 이상상태가 아닌 일상적 삶이 수반하는 고통의 다른 이름이기도 해서, 이제 학교를 떠나 새로 나아가는 임상현장에서 마주하게 될 많은 질병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다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고난이도의 의료적 접근이나 약물요법이 기본이고 절대적이고 최선인 질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원인으로만 설명되지 않고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덤벼보아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를 정확히 알고 정확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해하는 촉각이 살아있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약국 문 밖으로 나가서 환자가 아닌 사람들도 만나고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출렁대는 갈등과 상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그러한 촉각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제자가 약국을 개업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그래서 더럭 겁이 나기는 하지만, 희망은 살아있다.

아픈 사람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약학 전문지식에 근거하여 하얀 알약 몇 개 선택해 주는 기계적인 행동도 잘 하고 거기에 더하여 따뜻한 눈길과 손길을 함께 얹어줄 수 있는 입체적 역량도 잘 갖춘 그래서 훌륭한 약사로 성장해 갈 수 있다는 희망.

그래서, 하얀 약사가운이 면허증을 가진 자의 권위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을 치유하는 전문가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희망. 이런 희망들을 약대 졸업생들 그대들이 가는 길에 뿌리니 가는 걸음걸음 사뿐히 즈려밟고 나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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