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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어느샌가 INN은 미운오리새끼가 되었다

2022-12-16 14:47:36 감성균 기자 감성균 기자 sgkam@kpanews.co.kr

“무엇이 임금이옵니까?”

영화 ‘남한산성’은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작품은 아니었다. ‘삼전도의 굴욕’으로 명명되는 우리 치욕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이 내심 불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료한 주말을 달래기 위해 의미없이 눌러대던 리모컨을 멈추게 하고, 보고싶지 않았던 영화를 결국 보게 했던 것은, 임금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두 신하의 팽팽한 대립이었다.

강한 신념으로 적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가 그들이었다.

‘명분과 원칙 VS 현실과 실리’. 

문득 현대사회의 복잡다단한 많은 문제들이, 합의점을 찾기 힘든 이 두 가지 대명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거창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직업병이랄까. 최근 약사사회에 새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성분명 처방’도 꼭 그러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명분과 원칙’이 주장한다.

“성분명처방을 밀어붙여야 할 때다. 상품명 처방은 지금의 품절 문제뿐만 아니라 어마한 규모의 리베이트 사건과 불순물 사태 등이 터질때마다 그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과 약사회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더 이상 국민건강과 약사직능의 추락을 방치할 수 없다. 언제까지 의료계의 힘에 끌려다닐 것인가. 제대로 한번 부딪혀 보자.”

‘현실과 실리’가 맞불을 놓는다.

“성분명처방을 어느 약사가 반대하겠나. 가장 효율적인 방법과 시기를 찾자는 것 아닌가. 애시당초 약사들이 주장한다고 될 것 같았으면 왜 20년 넘게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겠나. 직능의 갈등이 깊어지고 이슈화될수록 오히려 입법부와 행정부는 부담을 느껴 제도 추진을 미룬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 쪽의 주장처럼 상품명처방의 폐해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어가고 있는만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인데 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가.” 

논쟁의 시점이 이쯤에서 끝나고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으면 좋으련만, 이해를 모르는 진영의 갈등은 동료였던 이들에게 생채기를 내기 시작한다.

“성분명처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 안될 줄 뻔히 알면서 회원들에게 그럴싸하게 어필하기 위해 머리띠 두르고 쇼하는 것 아니냐.”

“우리가 할 소리다. 안되도 밀어붙여야 하는 현안을 슬쩍 비껴가면서 시끄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고 정치적인 상황만 고려하고 준비하는 것은 오히려 직무유기 아닌가.”

더욱 문제는 이 상황을 양비론적으로 몰고 가며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일부 세력들로 인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성분명처방의 명분과 현실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약사들 중 과연 누가 더 나쁘고 못한다고 판단할 수 없을 것인데 말이다. 마치 남한산성에서 임금에게 명분과 실리를 각각 내세우던 신하들 중 어느 누가 충신이 아니었다고 재단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성분명처방’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고뇌는 이어질 것이다. 

명분과 실리의 접점을 과연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진영의 갈등을 겪고 있는 이들이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무작정 자기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차후 벌어질 결과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고민하는 자세도 함께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성분명처방’과 관련한 논쟁에서 마지막으로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당부는 국제일반명제도(INN)가 뒤로 밀려난 아쉬움이다.

지난 2018년 FIP서울총회를 즈음해 국내에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지만 현재 INN은 의료계에서는 ‘성분명처방’을 위한 꼼수라 경계받고, 약사사회에서는 ‘성분명처방’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휘둘리기 일쑤다.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고 있는 듯 하다.

제네릭의약품의 명칭을 국제일반명(성분명)+회사명칭의 형태로 사용하는 INN은 성분명처방과 분명히 다르다. 

‘성분명처방’은 의약품의 처방과 조제에 국한된 제도이다. 그러다보니 처방 주체간의 주도권 다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면 INN은 허가의 영역이다. 제네릭의약품의 허가제도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의약품의 개발단계에서 INN이 정해질 수도 있다. 

더구나 INN은 약업계가 주장할 명분도 분명하다. 이미 세계보건기구(WHO)에서 1950년부터 시행 중인 제도이고, 현재도 미국이나 유럽 등 상당수 국가가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식약처가 연구용역을 추진하려는 시도도 했고, 한국얀센은 타이레놀에 대해 INN 적용을 검토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특수한 직능 간 갈등구조로 인해 무산됐지만 추진할 환경적 상황은 분명하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INN제도는 동일한 의약품에 대한 상품명과 성분명이 세계적으로 통일되지 못함으로써 보건의료인간에도 의사소통이 어렵고 메디케이션 에러가 발생하며 소비자의 의약품 정보획득과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권익보호가 어려운 점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로 의약품의 개발에서부터 허가, 처방, 조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관여되는 제도이다. 

즉 세계적인 트렌드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분명에 대한 국민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성분명처방을 대신해 명분과 실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꽤 합리적인 대안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원칙과 명분, 현실과 실리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묘수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 어렵다면 함께 이해와 양보를 전제로 머리를 맞대보는 것은 어떨까. 남한산성의 신하들이 방법만 달랐을뿐 모두 구국을 바라는 충신들이었던 것처럼, 약사들 역시 약사직능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은 하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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