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캠페인
타이레놀 배너 예비약사세미나
  • HOME
  • 칼럼 및 연재
  • 약공시론/기고
우황청심원 웹심포지엄 2탄

오늘 하루도 눈이 부시게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 사회약학실 손현순 교수

2019-07-08 06:00:39

드라마는 끝났지만 ‘눈이 부시게’의 여운은 내게서 한참 동안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삶을 차분히 바라보게 한 스토리텔링도 감동적이었지만, 누군가의 엄마이고 딸이고 그리고 '나'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속삭여 주었던 – 우리의 삶에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은 없으니 후회스러운 과거나 불안한 미래 때문에, 그리고 지금의 삶이 비록 힘이 들어도, 지금을 망치지 말고 오늘을 살아가라는 – 잊지 못할 엔딩내레이션으로 인하여. 

반가운 방학의 시작. 학생들에게 작은 바람 하나를 써 본다. 두 달간의 방학을 눈이 부시게 보내기를. 알츠하이머를 앓던 노인 혜자도 자기 삶에서 가장 찬란했던 25살의 시간으로 되돌아갔던 것처럼, 20대의 시간은 되돌아가고 싶은 가장 눈부신 날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되돌려 본 기억 속 나의 20대는 지금의 우리 학생들과 다르지 않게 고등학교 4학년 같은 촘촘한 공부 일과에 묶여 있었다. 집-도서관-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서예동아리방. 나의 일상은 그런 삼각형 구도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많은 시간을 쏟으며 도서관에 처박혀 공부했던 일은 신기하게도 그리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졸업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무한열정을 쏟았던 직장 일 또한 마찬가지다.      

그 대신, 20대인 우리 학생들과 소통하며 아름답게 꺼내보는 나의 20대의 기억들은 약학 관련 책 바깥의 세상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했던 경험들이다. 그것들은 내 삶을 구성하는 여러 개의 블록과 블록을 서로 단단하게 연결하고 지탱해 주는 모르타르와도 같다. 

실험실 창밖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울던 친구. 약대 1층 우편함에서 내게 보내 온 여러 개의 타 학교 학보를 품에 안고 웃었던 일. 먹향 가득한 서예동아리방을 나서면 선선한 밤공기와 함께 코끝으로 다가온 라일락 꽃향기. 만개한 봄꽃들을 그리고 곱디고운 단풍잎들을 그냥 모른 척할 수 없어 중간고사 기간 짬짬이 학교 주변 길을 혼자 거닐었던 일. 천정에 닿을 만큼 커다란 우퍼에서 나오는 웅장한 음악소리도 자장가가 되어 주었던 명동 필라델피아 클래식음악 감상실. 종로서적 앞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밤늦게야 확인할 수 있었던 일. 대학연합동아리 선후배들과 80년대 학번이면 피할 수 없었던 묵직한 이야기를 밤하늘의 별과 함께 나누었던 토요일 오후의 광화문. 

노란개나리 옆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고 그 노래를 따라 불렀던 사람들. 딱히 목적지 없는 기차를 타고 가서 걸었던 낯선 길과 그 길에서 만났던 이들. 방바닥에 엎드려 검정 잉크를 찍어 펜으로 손편지를 쓰던 밤과 또 다른 밤 사이의 여백.  

기억 속에 남은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20대의 흔적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에서 나는 발견한다. 내 마음을 나도 몰랐고 감정의 흐름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도 몰라서, 내 삶을 내가 온전히 결정하지 못하고 때로는 타인에게 때로는 세상에 맡겼었다는 것을.      

이런 생각도 한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각자가 작가가 되어 자기만의 소설 한 편을 써 내려가는 과정이라는 생각. 20대는 소설의 등장인물을 구성하고, 시대와 장소적 배경을 설정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희망적인 사건들을 넣어 기본 스토리를 짜는 시간. 그렇게 짜놓은 대로 30-40대에는 다채로운 경험과 새로운 시도들을 하면서 역동적인 스토리를 펼쳐나가는 것. 

40-50대가 되면 축적된 경험치를 바탕으로 자신감은 충만해지지만 각본에 없던 돌발적 위기와 갈등으로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며 그러면서 그 때까지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수정하게 되는 변곡점을 맞는 것 같다. 

그러다 50-60대에 이르면 쨍한 햇살로 아침이슬이 사라지듯 고단한 삶의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거나 아니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안정감과 성숙함이 채워지고, 소설의 결말을 향해 가는 것.   

그런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그 안에 녹아있는 작가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테마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려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방학엔, 기술혁신이 미래를 위협할 거라고 실제보다 더 과장된 말들 때문에 미래를 대비할 스펙을 쌓아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습관적 강박증은 좀 내려놓고, 또 약사 직업의 위기라는 생각이며 졸업 이후의 불안감 같은 것도 좀 접어두라 하고 싶다. 

내가 내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살기 위해 지금 20대에 해야 할 일은, 타인이 결정해주는 삶의 방식을 내게로 더 가까이 끌어오는 데 힘을 쏟는 것보다, 내가 써 내려갈 한 편의 소설 속에 어떠한 삶의 가치와 목표를 담아낼지에 대한 생각을 단단히 하는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지금, 나 자신을 읽어내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책도 읽고 토론도 하고 마음껏 꿈꾸는 것도 잊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것을 함께 하는 경험을 채워가면서, 두 달간의 방학이 더 없이 눈이 부신 시간이 되면 좋겠다.

B밀처방캠페인

B밀처방캠페인
예비약사세미나

많이본 기사

이벤트 알림

B밀처방캠페인

약공TV베스트

팜웨이한약제제
그린스토어2

인터뷰

청년기자뉴스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