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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공간에 대한 생각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 사회약학실 손현순 교수

2019-10-14 06:00:35

집 앞 약국에 들렀다. 약국 안으로 함께 들어간 쨍한 햇살 때문이었을까? 대부분의 약국들이 그러하듯 이 약국 역시 내가 편하게 상담할 공간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고객을 응대하는 모든 일들이 그저 카운터에서 이루어졌다. 약국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공간 구성. 요즘 우리 학생들과 함께 논의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이다.  

약국(藥局)은 물리적 공간이다. 약국은 의약품의 마지막 유통단계로서 소매상 역할을 하지만, 의약품은 무형의 약사서비스가 함께 제공되는 상품이기에, 약국은 전문직 약사가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별한 장소와 환경으로 해석되는 공간이다. 그러한 약국 공간에서, 양심적이고 신뢰할 만한 약사가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회적 책무를 다해 주기를, 약사에게 면허를 부여해 준 우리 사회는 기대한다.  
  
약사는 약국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처방약을 조제하고 복약지도를 하고, 일반약과 여러 가지 건강관련 제품들에 대한 상담도 하고 판매도 한다. 약국은 매일매일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 작은 공간이다.   

그러면서 약국 안의 약사들은 말한다. 우리는 약에 대한 전문가이고 우리가 하는 일은 전문적인 서비스라고. 그러나 약국 바깥의 사람들은 정작 약사를 얼마나 신뢰하고 전문성을 인정하며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만일 약사와 보통사람들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 그 간극을 좁힐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약사에 대한 신뢰와 전문성 그리고 만족도는 약국 환경, 약사 개인 수준 그리고 환자의 특성 등 복합적 요소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가지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약국이 일반시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평가되면 좋을까? 실력있는 전문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 그러려면 약국의 서비스도 지금과는 달라져야 할까? 일반시민이 만족할 만큼 약사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그에 적합한 공간적 요소도 갖춰져야 할 것이다.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고 이는 ‘공간이 변하지 않으면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약사가 변하려면 약국 공간이 변해야 한다는 말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전문성, 신뢰성, 그리고 개인정보보호 관점에서 약국의 공간 변화를 제안해 본다.   

첫째, 효율성을 고려한 공간 배치와 공간 구획이다. 약국 내 업무 흐름은 소비자와 약사의 동선과 연관된다. 소비자는 약국 방문 목적에 따른 동선이 있고, 약사는 서비스 업무 단계별 동선이 있으므로, 이들의 동선 흐름을 고려하여 기능별로(출입구, 처방전 접수대, 조제실, 복약상담실, 계산대, 상품진열대, 환자대기공간, 의약품보관창고 등) 공간을 배치하고 구획을 구분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의 약국에서도 이들 모든 기능이 수행되고 있지만, 효율성이나 공간분리 측면에서 보면 개선될 여지가 많다. 요즘 약국들이 산뜻하고 세련된 분위기로 변화하고 있지만 대개가 사업다각화와 매출 증대를 위한 인테리어 개선 의미가 더 짙다. 보다 더 본질적인 고민이 녹아들었으면 한다.  

둘째, 의사소통 내용이 보호되는 상담공간의 구비이다. 약사의 전문성은 복약지도와 상담과정에서 활용되고 이 때 약사-환자간 의사소통이 필수이다. 약사의 신뢰성 

또한 약사-환자간 의사소통과정에서 형성되므로 약국 내 의사소통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독립적인 상담공간은, 약사에게는 자신의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 주고, 환자에게는 건강이나 질병관련 개인정보를 말하여 약사의 도움을 충분히 받도록 해 주기 때문에, 약사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어쩌면 필수조건일 수 있다. 

앞으로 조제자동화기기 사용이 확대되고 단순조제업무의 부담이 줄어들면 약사서비스는 환자중심의 상담으로 이동할 것이고 지역사회 돌봄체계 내 약사역할에 대한 환자경험이 늘어나면서 약사상담 수요도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상담공간을 마련하고, 공개형 카운터에서 모든 약사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이제 그만 탈피하면 좋겠다. 

지금 상담이 가능한 공간을 갖춘 약국이 아주 일부 있기는 하나 대개가 낮은 칸막이 형태라서 온전한 상담을 하기에는 불충분하다. 그러나 상담공간 구비라는 것이 약국 공간을 추가 확장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며 카운터 한쪽을 개조하여 상담하는 약사와 환자의 모습과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높이의 칸막이 설치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셋째, 약국을 전문가의 공간이라는 이미지로 바꾸는 것이다. 드링크제 박스가 빼꼭히 쌓여있고 약국 창문에 광고포스터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의약품 판매장소로서의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탈피하면 좋겠다. 의약품보관창고를 구획분리하고, 약사별 근무시간과 이름 명패도 붙여 놓고, 독립적 상담실은 약사 전문가의 공간으로서 전문서적도 비치하고 평생공부하는 약사 모습을 실현하면 좋겠다. 

약사의 하루 일과 중 카운터보다는 상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전문가 역할 수행에 대한 자긍심도 키웠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냥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데, 그리고 다 공감도 되고 좋은 얘기인 줄 알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약사 직업의 지속가능성을 원한다면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약사로 변화가 필요하고 그러한 변화를 가능케 할 약국 공간의 변화를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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