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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는 것과 놓아주는 것 사이의 균형 잡기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임상약학대학원 겸직) 손현순 교수

2022-05-09 05:50:05

연둣빛 잔치다. 지난 가을 놓아주지 않았다면 나무는 지금 이렇게,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새 잎을 피워내지 못했으리라. 자연의 숨결은 언제나 진한 감동 자체이건만, 이런 자연의 질서를 외면한 채 난리법석인 사람들이 많다. 

누구의 것도 아닌 봄 햇살을 모두 함께 느끼고 나누며 평화로울 수 있지만, 힘자랑을 하며 땅 따먹기에 골몰하는 인간들에게 진짜 공부 좀 시켜달라고 자연 스승님께 부탁 좀 하면 안 될까 싶다. 타자를 아프게 하고 인간존중 질서에 어깃장을 놓는 욕심덩어리들을 들여다보고, 생각도 행동도 조금 더 깊어지고 차분해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인생은 붙잡는 것과 놓아주는 것 사이에서 균형 잡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2년간의 코로나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지금, 우리의 감정 선에는 설렘과 희망이 주를 이루지만 도전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도 있다. 전무후무한 특수 상황을 만들었던 코로나 기간 동안 우리의 삶은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재편되었고 신기하게도 우리는 잘 적응했다. 일상을 되찾아도 많은 부분, 과거로 회귀하지도 현재에 정지되지도 않고 또 다시 미래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숨 가빴던 변화들이 계속 이어질 거라는 예측에는, 변화에 동반되는 저항 또한 맞닥뜨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내포된다.  
   
한시적으로 허용되었던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의 지속 여부에 대한 의약계의 반응 또한 변화에 대한 저항의 일면이다. 의계와 약계의 입장차가 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진료와 약 전달의 전형적 틀에서 보면 엄청난 변화다. 앞으로 문제를 풀어갈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간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엄청난 변화들을 고려하면, 약국 환경은 의약분업 이후 아주 큰 변화는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비교적 안정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기술과 사람의 변화는 속도도 빠르고 방식도 새로울 것이라서, 약사직능의 미래를 전략적으로 설계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하는 속도는, 미래사회에서 약사직업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기초가 되는 약사의 존재가치를 확보 측면에서 중요하다. 조직이 필요하겠지만, 조직만 만든다고 - 그것도 약사회장 임기에 따라 뒤바뀌는 ? 변화에 대응하고 미래가 준비되지는 않는다. 정확한 방향성을 잡고 연속성을 가지고 충실하게 그리고 단계적으로 준비해 나갈 브레인들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약사집단 집행부의 역할일 것이다. 어떤 문제의 접근이나 해결 방식이 약사 직업 환경이 안정적이었던 과거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약사회가 이익집단이기는 하지만, 약사직업의 존재가치가 공적가치와 연관된다는 점을 집행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사회 변화의 흐름을, 약사집단에 치우치지 않고, 냉철하게 분석하고 객관화하고 그래서 사회적 관점에서 균형있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약사집단 전체 수준에서 내세우는 명분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때로는, 약사 직업의 미래 지속성을 위한 방향의 선택이, 지금 당장 코앞의 편익과 손실 계산법에 따른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결정일 수 있다는 것을, 개개 약사 수준에까지 이해시킬 수 있는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방법과 절차도 갖고 있어야 한다. 약사들의 선한 힘을 모으고 조율하는 집행부의 소통의 리더십이 한 단계 상향되어야 하겠다.  

약사집단은 약사개개인의 집합체다. 집단이든 개인이든 누구도 잘못된 선택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올바름의 선택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역량의 산물이다. 진짜 약사다운 가치철학과 사명감,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감수성 같은 것까지. 변화에 대한 우리의 저항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변화보다는 익숙한 과거방식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바람을 배신하고 저항도 무시하면서 세상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다.  

대면중심 약사업무 수행방식에 변화가 오고 약사서비스 전달방식이 다양해지는 것은 과거 의존적인 세대에게는 매우 버겁다. 그것 말고도, 국민 눈높이와 서비스 수요가 달라지면서 약사 전문성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과거 방식의 약사에 대한 신뢰 구성요소도 그대로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공급자 관점이 아닌 수요자 관점의 사고 체계로 바꾸고, 다양한 채널의 커뮤니케이션 역량 같은 요소들이 훨씬 더 중요해질 것 같다.   

근본적인 대응도 있다. 스스로 약사의 직업적 가치를 수시로 점검하는 것이다. 약사가 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성찰하는 건 서비스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자각한다는 것이고, 그래야만 개인수준의 욕심에 앞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요구를 경청하면서 직업적 가치를 실현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직업윤리 관점에서 약사 역할을 정의하는 것으로서, 약사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토대다. 국가가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은, 공공선에 가까운 책무를 수행하여 사회에 기여할 거라는 믿음의 결정이므로, 그런 무게감에 해당하는 약사의 특권은, 개인적으로 더 많은 것을 갖는 도구도 아니고, 당연한 것도 아님을 상기해야 한다. 

전문가로 분류되어 타자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당연하게 간주하는 것은 약사 전문성의 공적기능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로서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끊임없이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평상시 약사의 수준 높은 전문성을 확인한 경험이 있을 때, 국민은 약사의 존재와 약사의 서비스가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지지할 것이다. 
 
습관의 문제도 있다. 약사 직업을 타자의 시선에서 객관화하고 이해하며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실제 문제를 왜곡하지 않고, 우리의 편견과 오류 또는 모순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 타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의 시선이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에 머물러 있음을 방증한다. 우리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닐 수 있고, 옳고 그름도 계속 변화한다는 것을 진정 안다면, 국민 가까이에 다가갈 기본 자세가 된 것이다.  

어떤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선과 타자의 시선, 우리의 이해와 타자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바로 그 지점이 논의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왜 약은 약국에서 약사한테 직접 받아가야 하는지, 약사 이권에 치우치지 않는 논리로 설명하고, 국민이 이를 명확히 이해하여 납득되게 하려면, 방법과 절차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약 배달 문제 뿐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변화의 흐름 속에서 약사의 가치를 어떻게 정당화하고 설명할지에 대한 대응전략 중에는 그것을 입증할 근거자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아야 할지를 현명하게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 본 시론은 약사공론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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