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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소티8/16~9/30

8월의 크리스마스와 사랑의 기술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임상약학대학원 겸직) 손현순 교수

2022-08-08 05:50:34

옛날 사진을 들춰보는 건 그 시간들이 그립기 때문이지만 덕분에 깨닫는 것도 있다. 

20대에 읽은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너무나 어렵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고, 30대에 본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조금 아린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였다는 것. 그러나 40대 나의 사랑은 기술이 한참이나 부족했으며, 50대에 맞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오래가는 슬픔이라는 것 등. 그렇게 시간은 우리를 새삼 알게 하고 또 변하게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모두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변화는 없으니, 논의와 타협이라는 어려운 기술이 필요한 것이리라. 과거의 우리는 20억 원짜리 약을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지만 지금의 현실이 되었고, 과거의 우리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약 배달이나 약 자판기가 비대면사회로의 변화를 틈타 지금의 약사 사회를 흔드는 첨예한 쟁점이 되었다.  

한시적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가이드라인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한시적’이라는 표현이 글자 그대로 읽혀지지는 않지만. 약사회 의견도 반영되었다는데, 약사회가 의견을 제출한 것 자체가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을 인정하고 일선 약국의 플랫폼 가입을 묵인한 것이라는 비판도, 플랫폼 업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못하게 현실적 대응을 한 것이라는 입장도 다 이해된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약국도 비대면 추세를 피하기는 어려울 거라 예상했다. 시기를 조금 늦출 수는 있을지언정. 그러나 국민이 정부규제완화를 정책기조로 하는 지금의 정부를 선택한 이상,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꿈을 꾸기는 어려워졌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약국 입장에서 이번 가이드라인은 비대면 진료 환자의 전자 처방전이 핵심 같지만 자연스럽게 약 배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변화에 현명하게 대응하려면 냉철한 상황 판단부터 해야 할 터, 약사의 시각이 아닌 국민, 제3자의 시각에서 분별해 보자. 약사들은 약이라는 것은 직접 약사한테 받아가야 안전하다고 힘주어 말하지만, 일반 시민들 중에는 약을 배달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이런 인식의 차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좁혀 나가려면, 그 차이가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 정직하게 짚어내고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온전히 약사 몫이다.  

첫째는, 시민들이 약을 잘 모르고 너무 쉽게 생각해서일 수 있다. 그렇다면 약사는 전 국민의 일상적 삶에 깊이 들어와 있는 약을 올바로 이해하게끔 시민 교육을 하자. 지역사회 내 교육 활동 참여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일단 평상시 약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복약지도나 복약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약에 대한 기본 교육을 정성스럽게 해 보자. 

둘째는, 약사 역할을 시민들이 평가절하하고 있거나 아니면 시민들이 인지하는 것보다 약사 집단 스스로만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약사가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납득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설득은 말로 되는 게 아니기에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는 태도와 실력을 보여주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연구를 통해 약사서비스의 중요성과 약사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알리는 데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물론 약사 스스로는 약사 역할을 객관화할 줄도 알아야하겠다.   

셋째는, 시민들이 지금까지 대면으로 경험한 약사서비스에 별로 만족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대면서비스가 비대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만족스럽다는 것을 시민들이 몸소 체험하게 하자.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만큼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대면으로 정말 좋은 서비스를 받아본 경험이 많은 사람은 설령 약 배달이 가능해도 약사를 직접 만나고 싶어할 것이다. 직접 약국을 방문하는 수고로움을 능가하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는 것을 경험시켜야 한다.

자구적 노력도 없이 변화의 속도를 제어하기는 어렵다는, 불편하지만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외부변화를 막아내는 대외투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외부변화에 대응하는 대내점검일 수 있다. 얼마나 크게 달라져야 하는지 약사 사회 내부의 치열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약사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 나갈지 미래 로드맵을 만들고 이를 단계적으로 추진해갈 약사회의 구심력과 리더십을 원한다. 

외적변화에 대항하는 집단적 행동이 약사들의 이기주의적 단결심으로 오해받는 일도 피해야 한다. 약사 개인들은, 세상의 그 어떤 변화도 약국 안 상황에 맞추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약국 밖으로 나가 세상의 변화를 좀 더 민감하게 느끼고 자가 발전하는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    
 
비대면 진료 중개 가이드라인에 플랫폼 업체가 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가이드라인 전반의 흐름은 매우 원론적이다. 대면진료가 원칙이고 약사 전문성은 존중되어야 하며 플랫폼이 아닌 환자가 약국을 선택 지정토록 한다는 것인데, ‘환자가 약국을 선택한다’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문장에서도 잠깐 숨을 고르고, 환자가 확실하게 믿고 선택하고 싶은 하나의 약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답을 써 보기를 권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 사랑의 기술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알고, 타인과 나, 세상과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지 더 많이 고민하고 그 정서적 바탕에는 겸손함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 본 시론은 약사공론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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