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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에 대한 수식어 찾기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 손현순 교수

2022-09-19 05:50:09

1982년에도 2022년에도 학생 MT는 대성리! 친절한 내비게이션은 잘 모르겠지만 대성리 가는 길은 많이 변했고 아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잊고 있다고 생각했거나 눌러두었던 이야기들이 가는 길 내내 여기저기서 튕겨 나왔고 그런 시간들을 간직한 나, 지금 여기 있으니. 82년의 내가 물었다. 

“너 지금 어떻게 살고 있어?” 
“괜찮은 미래를 희망하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살지.”

22년의 나는 좀체 한숨 돌릴 틈이 없다. 강의하는 것이 일상이지만 부족함을 어떻게 채울지가 항상 고민이고 숙제다. 익숙하지 않은 ‘경영’과 ‘경제’같은 과목은 특히 그렇다. 대학원에서 사회약학을 전공하며 처음 접했던 경영과 경제를 지금 약대생들은 학부에서 배운다. 절대불변 진리를 다루는 과목이 아닌지라 오늘도 인간이 만든 세상을 알아가기 위한 현재 진행형 더하기 공부 중이다.  

여기에 미국식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투자전문가들의 사회 분석과 제안을 살짝 가져와 보려 한다. 현대자본주의는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되면서 자본주의는 곧 종말할 거라는 예견을 제법 접하곤 한다. 저들이 제시한 대안은 개인의 책임감 내지는 책무의식(accountability)에 기반한 시민자본주의이고, 제법 논리적으로 설득되었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인다는 저명한 경제학자의 이론을 그대로 믿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시장은 우리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경제는 우리가 움직이게 한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고, 자본주의 시장은 비도덕적이라며 비판하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비도덕적인 만큼만 비도덕적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고, 그리고 지금의 자본주의 모습은 개개인들의 선택의 합의 결과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런 공감은 자연스럽게, 우리 개개인은 좋은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에 따라 바람직한 결정을 하며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물건을 살 때나 직장을 선택할 때도 단지 가격이나 월급 같은 조건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개성 있는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하고 소비하고 삶의 여유를 찾는 과정에서 타자가 만든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들이 새로운 경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윤리적 소비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소비자의 절반 이상은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회사의 제품에 돈을 더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특히 지금 우리가 직접 겪고 있는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에 의한 환경 재앙들이 개인과 사회의 가치관 조정에 촉매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다. 그동안 가장 중요한 행동선택 기전이었던 경제적 동기를 대체하는 문화적 변화의 단면이다.      

우리는 경제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제적 부를 갖는 것과 선하게 사는 것 사이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좀 불편하다. 

그러나 이제 그 대안을 찾아가는 길에서,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기업들도 이윤만 추구하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만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목표로 두기 시작했다. ‘사회적 책무’라는 덕목이 우리 사회 시스템과 문화와 행동에 중요하게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동향을 감안하여, 약사개인과 약사사회는 어떤 직업적 가치관을 정립하고 행동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지 심층적으로 점검하고 사회적 흐름에 조화를 맞추어갈 수 있어야겠다. 이러한 대응은 아마 미래세대 약사들이 더 빠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약사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은 과거세대나 미래세대 어느 한 쪽이 독자적으로 할 수 없고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맞들어야 한다. 

따라서 미래세대 약사들은 산업화시대 한복판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응해 가며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해서 목적적 성취를 이뤄내는 것이 당연한 삶의 태도이자 습성이 된 과거세대 약사들의 역사를 가감없이 이해해야 하고, 과거 세대 약사들은 미래세대 약사들이 어떤 직업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선입견 없이 들어보아야 한다. 
  
이는 약사사회를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내일로 나아가게 할 수많은 리더들의 선택에서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약사사회가 리더에게 요구한 역량이 주로 회원관리를 통한 집단적 결속력과 약사집단에 대의명분과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성과 달성이었다면, 앞으로는 약사 직업의 기본원칙을 올바로 지키고 지금 바로 얻을 수 있는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중요한 가치를 구분하고 그러한 가치를 실현해 나갈 책무의식이 더 중요한 역량이 되어야 한다. 외딴 섬에서 약사들끼리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를 섬길 때만이, 비록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내가 존중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만, 약사로서의 어떤 선택이 공적 가치를 반영하고 공동선을 향하는 결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약사 직업인의 삶에서 이익과 가치가 균형을 이루려면 약업경영 철학의 중심에 사회적 책무감을 두고, 이를 확산하기 위한 약사사회의 조직적인 운동과 교육이 이어지면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약사’라는 단어 앞에 약사 직업의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대변하는 괜찮은 수식어 하나쯤 붙여지면 좋겠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따뜻한?’... 여러분 생각은 어떠한가?


※ 본 시론은 약사공론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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