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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술로부터 배우는 약사의 길

한국병원약사회 조윤숙 부회장(서울대학교병원 약제부)

2023-01-16 05:50:15

동양의 의성(醫聖)이라 불리는, 약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명의(名醫)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뛰어난 의술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면서도 애민(愛民) 정신을 실천했다고 한다. 

편작은 의술뿐만 아니라 인품과 덕이 매우 높았다고 하며, 그의 명성을 들은 권력자들이 가까이 두고 싶어 했지만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인술을 펼쳤다. 뛰어난 의술 때문에 편작을 우러러보는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의료행위에 담긴 인간을 귀히 여기고 아끼는 고귀한 정신이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뿐만 아니라 물질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한번 쯤 인간을 사랑하고 아꼈던 편작의 위대한 정신을 기억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편작은 병을 고치는 실력으로 유명했지만 그가 인정했던 최고의 의술은 병을 앓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었다. 편작의 두 형은 모두 의사였다. 위(魏)나라 군주가 어느 날 편작에게, 편작의 3형제 중에 누가 제일 의술이 뛰어난지 물었다. 편작은 큰 형이 제일 뛰어나고 그 다음이 둘째 형이며, 본인은 제일 의술이 떨어진다고 대답하였다. 위나라 군주가 그렇게 뛰어난 두 형이 왜 유명하지 않은지 이유를 묻자, 편작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큰 형님은 병이 나타나기 전에 얼굴빛만 보고 원인에 대한 치료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고, 둘째 형님은 병을 병세가 미미한 초기에 치료하여 증세가 중해지기 전에, 가볍게 치료하기 때문에 명성이 동네에만 머물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은 중병을 치료한다고 맥에다 침을 놓고, 피를 뽑고 약을 붙이고 수술을 하는 등 난리 법석을 떨기 때문에, 나라 안에서 유명해졌을 뿐입니다.” 편작은 사람들이 고통을 느낄 때 비로소 병을 찾아내 고통을 덜어주니 사람들은 자신만을 명의로 섬겨 유명해졌지만, 실제로 높은 수준의 진정한 의술을 펼치고 있는 두형의 의술은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환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처방은 절대 하지 않겠다.나는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의료인들이 수련 과정을 마치며 선언하였던 윤리강령을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한 부분이다. 동양에 ‘편작’과 같은 명의가 있다면, 동시대에 서양에서 활동했던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의 아버지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존경받고 있다. 그는 모든 질병에는 원인이 있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치유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이는 인체에서 보이지 않는 질병의 근본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의술의 발전이 있다는 그의 숭고한 정신이 현대 의료인에게도 행동강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자문화권에서 좋은 의사가 갖춰야할 명의의 기준은 다음 4가지 일구,이족,삼약,사기(一口,二足,三藥,四技)라 한다. 첫째가 입, 두 번째가 발, 세 번째가 약, 마지막이 기술이라는 것이다. 

명의는 먼저 환자와 말로 대화하여 치료하려고 해야 하며, 그다음 찾아가서 자주 환자를 접하여 환자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고, 그것만으로 치료가 안될 때 약을 적절히 잘 활용하고, 마지막으로 의료장비나 기술을 활용하여 치료해야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대 의료의 현실은 이러한 순서가 바뀌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 과정에서 약에 의한 부작용이나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고, 증상 치료를 뛰어 넘어 질병의 근본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료 현실은 한번 병원에 가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병원에 지속적으로 방문해야하고 약의 개수도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약 처방이 많을수록 의료진의 인센티브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약국에서도 처리하는 처방전의 수가 많을수록 수익이 되는 구조인 것은 동일하기는 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환자들이 질병 치료에 도움을 받겠지만, 일부 환자는 과잉 치료나 장기적인 약복용의 직간접적인 부작용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친구 어머님이 병원에서 고생하시다 안타깝게 돌아가셨는데, 약의 부작용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여 푸념이 섞인 의문을 제기해서 약사로서 답변하는데 난처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원과 약국 및 의료진들만의 노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과제인 것 같다. 각 분야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환자 중심의 학교교육의 보완, 사회교육의 개혁적인 개선, 의료정책, 보험정책 등의 종합적인 연구와 실천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의료관계자들도 직접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방관하거나 대책에 대한 논의가 더 지연될 사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의료시스템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만큼 고통을 겪게 되는 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와 내 가족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기사에 보도된 약사 커뮤니케이션 관련 특집에서는 국민건강을 위한 약사 상담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환자와의 의사소통에서 스킬이 전부는 아니다. 인간으로서 환자를 이해하고 평균적인 데이터 기반이 아닌 각각의 스토리를 가진 인간으로 바라봐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질병이 아닌 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한 약대교수님의 말씀이 인용되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라고 하는 현대인들에게 약과 증상치료 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대부분의 의료인이라면 인정할 것이다. 만약 질병이 진행되지 않은 초기 상태에서 처방전에 따른 약을 조제한 후 복약상담을 할 때 사람중심의 멘토링을 하여, 예방과 치료가 자기주도로 이루어지도록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국민들은 ‘유레카(바로 이거야)’라고 하면서 얼굴이 희망으로 가득차 기뻐하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나 또한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다. 

현대인에게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심인성 원인의 질병에 대한 의료의 한계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약사들은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훌륭한 능력과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약국과 병원에서 비교적 국민과 가까운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건강 및 의료관련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약사들 스스로의 노력에 더해 의료관련 정부기관, 학교, 약사단체, 약국, 병원 등과 협력하여 환자들의 심리적인 근본 원인까지도 상담이 가능해 진다면, 국민과 환자들은 이렇게 인정하며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전달할 것이다.  

“이 시대에 진정한 편작의 형들이 나타났다고...”


※ 본 시론은 약사공론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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