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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콜마

변산바람꽃과 함께, 봄 마중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 손현순 교수

2023-03-06 06:00:10

변산바람꽃이 피었다고 한다. 봄 마중하러 가자. 빼곡히 움튼 매화 꽃봉오리들, 땅위로 쑥 올라온 쑥들 ... 또 다시 와준 봄이 반갑고 설렌다. 그러나 흔들리며 피어날 꽃들 따라 흔들릴 내 마음을 어떻게 감당해 낼지 걱정이다. 봄은 그렇게 두 얼굴로 온다. 

하나 더. 새로 만난 우리 학생들이 잘 성장하게끔 길을 안내하고 또 함께 걷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잘 해낼지 진중하게 연구하라는 명도 내린다. ‘좋은 사람이 되면 당연히 좋은 약사가 된다.’는 나의 오래된 지론은 이번 학기 강의에도 녹아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약대생들과 약사들, 그 어느 누구도 좋은 약사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봄 마중할 이 때, 지난겨울보다 쪼끔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게끔 내 자신에게 과제 하나 주면 어떨까? 어떻게 좋은 약사가 될 가능성을 높일지 구체적 방법을 찾고 실천해 보자는 과제. 1학기말이나 연말쯤 과제 수행 결과를 자가 평가까지 해 보겠노라 계획까지 세운다면, 좋은 약사가 될 가능성 100% 확신!    

좋다. 우선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부터 정의하자.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려 하니 쉬운 듯 제법 어렵다. 물론 관점에 따라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겠지만, 인간 보편적 관점에서 3가지만 말해 보자.       

첫째, 나의 존재가 어디쯤 위치하는지를 아는 사람. 지금 우리들 각자는 광활한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지구별, 조그만 대한민국, 복작거리는 도시에서 서로 치고 박으며 분주히 살아가는 오천만 구성원들 중 하나. 그럼 약사는? 세상 사람들이 필요하다 해서 만들어 쓰고 있는 수많은 물건들 중 하나인 약에 대해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정도의 존재. 약사 직업의 가치를 올바른 방향으로 구현하려면 약사의 위치를 객관화하고 과장없는 겸손함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둘째, 나는 오롯이 나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아는 사람.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또는 무엇의) ‘덕분’이고 내가 소유한 것들 또한 온전히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온전히 존중하지 않고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사회구조와 리더십 문제를 비판할 것이고, 출근길을 불편하게 만든 시위에 대해 불평은 할지언정 그저 불평만 하지는 않을 것이고, 장애를 가진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처럼 지하철 타고 어딘가를 오갈 수 있도록 하는 예산 배정을 지지할 것이다. 

그래서 ‘불의는 참아도 불편은 못 참는다’는 요즘 사람들에 대한 일각의 평가가 틀렸음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살다보니, 사람들이 ‘불행’이라 일컫는 범주의 일들이 누구에게나, 나도 예외 없이, 어느 날 덜컥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살고 지는 우리네 삶의 이치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깨닫는다면, 근자에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공감’능력은 절로 갖춰질 것이다. 

셋째, 내가 타인과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 의도치 않았지만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해를 끼친다는 걸 알아야만 한다. 그러니 생각은 좀 있어야겠다. 약대에 오고 약사가 되고 하면서 성취감도 맛보고 주변의 부러움도 받고 있겠지만, 거기에 너무 오래 빠져 있지는 말자. 

시험성적으로 평가받은 우등생의 능력이라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소양이나 자질과 과연 얼마나 일치하는지 냉정하게 분석도 해 보고, 또 앞으로 어떤 생각의 갈래를 좆으며 살아갈 것인지도 고민해 보자. 무작정 말고, 지금 이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노력의 시작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통로인 언론이라는 프리즘이 얼마나 정확한지 혹시 진실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 보고, 그래서 그마마 편향되지 않고 균형잡힌 언론을 선택하는 것부터다. 

그 다음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다면적이고 역동적인 사건들과 상황들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왜 1년이 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지, 미국은 왜 굳이 일본과 한국을 끌어들여 공조하겠다고 하는지, 우리나라 외교가 왜 미국과 중국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적이어야만 하는지, 누군가는 왜 구체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자본이 사회적 불의의 근원이라며 비판하는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왜 적절치 않다고 보는 것인지, 지난 몇 년 간 수도권 아파트값이 왜 그리 올랐었는지, 왜 원자력 발전 의존도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는지, 반도체 패권을 장악하려는 미국의 본심을 우리가 왜 경계하게 되는지, 일반시민도 왜 정치에 관심을 갖고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하는지, 왜 경제성장 전략만이 인류에게 최선이 아닌지, 왜 기후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고 하는지, 소비를 줄이면서 기꺼이 불편함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말에 우리가 왜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지구 한편에서는 비만 환자가 넘치는데 왜 다른 한편에서는 기아로 죽는 아이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등등. 

바빠서, 귀찮아서, 너무 어려워서 관심 갖지 않고, 그래서 잘 알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내가,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하고, 누군가가 우리의 소중한 생명과 권리를 중시하지 않는 결정을 하도록 용인하는 것이 되고, 내 삶에 직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일들이 부지기수다.  

우리는 고작 백년도 못살고 소멸하는, 유한한 존재다. 그런 우리가 그동안은, 인간의 지성이 시간이 쌓일수록 인간을 이롭게 하고, 비록 흔들릴 수는 있을지언정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해 나갈 거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화를 선택하지 않는 지도자들, 불평등을 만들고 키워가는 거대자본들, 오늘만 살고 말 것처럼 행동하는 인간들의 무지막지한 환경 파괴력, 인간능력을 능가할 인간의 기술 개발에 대한 집착 등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보면서, 앞으로 ‘좋은 인간’에 대한 담론이 훨씬 더 중요해질 것으로 예감한다.  

하여,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을 토대로 우리가 좋은 사람에 대해 논했듯이, 공부는 왜 하는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그런 맥락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벚꽃 아래 토론수업이 기다려진다. 


※ 본 시론은 약사공론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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