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캠페인
타이레놀 배너 예비약사세미나
  • HOME
  • 칼럼 및 연재
  • Pharm in Art
우황청심원 웹심포지엄 2탄

백색 흑사병 '결핵' 치료약이 없던 시절

<70> 김유정의 편지 『필승전』

2014-05-13 06:00:36 약사공론 기자 약사공론 기자 kpanews@kpanews.co.kr


소설가 김유정(1908〜1937)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뭇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김유정은 탐정소설을 번역해 돈 백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라며 『필승전』으로 제목 붙인 마지막 편지를 1937년 친구 안회남에게 보냈다. 이 편지를 쓰고 11일 만에 김유정은 폐결핵으로 29살 나이로 사망했다. 요절한 천재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은 극히 짧은 유년기를 제외하고는 평생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던, 우리문단에서 가장 불행했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33년 25세 때 결핵에 걸렸다. 1937년엔 처지가 너무 불쌍해서 동료문인 김문집이 병고작가 구조운동까지 벌이기도 했다. 김유정은 허약체질에 질병이 많았다. 늑막염도 걸렸고 치질과 결핵으로 고생했다. 말년에는 돈을 구하려고 치열하게 소설을 썼다. 좋은 음식에 풍부한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29세에 어린 나이에 죽었지만 약 5년도 안되는 짧은 시기에 단편소설만 29편을 썼다. 채만식은 「밥이 사람을 먹다」라는 글에서 폐결핵 3기인데 쉬지 않고 소설을 쓰는 것이 그에게 독약이 됐다고 한탄했다.


일제강점기 신문부고. 폐결핵 사망사실을 알린다.

안회남의 수필 「겸허」을 보면  김유정이 우랑이라고 하여 쇠불알을 구워먹었다고 한다. 유정은 자신이 잘 먹는 살모사에 대해 "그걸 잡아선 산채로 좋은 약주에다 넣고 뚜껑을 딱 덮어 두었다가, 한 달 후에 먹어봐, 어떤가. 살무사가 다 녹아버리고 뼈만 앙상하다. 너 그놈만 집어버리고 나면 약주술 위에 하얀 동전만한 기름덩이가 동실동실 뜨는데, 그게 여간 보하지 않거든!" 약골 김유정의 보약론이다. 유정은 자신이 허약체질에 결핵까지 걸려서 그런지 영양섭취를 잘하려고 노력했다. 소위 몸보신하는 음식을 좋아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결핵을 치료하는 약이 없었다. 오로지 섭생과 요양뿐이었다.

수필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에서 자신이 상당한 폐결핵을 앓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매일 피를 토한다고 실토한다. 수필 「병상영춘기」에서는 병상에서 치루를 앓고 있으며 심한 설사를 호소한다. 변기까지 소독약으로 소독처리한다. 기침도 '폭발하고' 치질이 괴롭다 한다. 그리고 소화불량에 위장약 '태전위산'을 복용한다. '태전위산'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한 제약회사에서 판매한 제산제다.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판매하고 있다. 

설사를 막는 '산약' 과 '밀즙'도 먹는다. 산약은 마라고 해서 자양강장목적으로도 쓰고 지사제로 먹기도 하는 약초뿌리다. 밀즙은 밀싹이 난 것을 갈아 쌀과 함께 죽으로 쑨 것이니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보급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하제 '락사토올'을 먹었다는 기술도 있는 것으로 보아 김유정은 설사와 변비가 교대로 오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걸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늑막염, 치루성 치질 등은 결핵성으로서 폐결핵과 함께 만성병으로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러나 수필 「나와 귀뚜라미」에서는 "이번 가을에는 귀뚜라미의 부르는 노래나 홀로 근청하며 나는 건강한 밤을 맞아보리다"라며 삶에 대한 긍정적 희망을 나타낸다. 

일제 강점기에 결핵치료약이 없었다. 그 당시 폐결핵에 걸리면 불치병으로 치부했다.  김유정은 병색이 심해지자 아편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구인회 동인인 시인 이상도 폐결핵에 걸렸다. 두 사람 모두 폐결핵에 걸렸다는 동병상련을 느꼈다. 1936년 가을날, 이상이 찾아와서 귓속말로 동반자살을 권유했다. 그러나 김유정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김유정이 죽은 지 20일 뒤 이상 역시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일제강점기 결핵요양원의 일광욕과 기흉치료기. ⓒ동은의학박물관


식민지 시대 당시에는 결핵 치료법 없이 기껏해야 요양을 하거나 섭생으로 병을 다스리는 정도였다. 외과 시술로 인공기흉법이나 폐절제술을 시행했지만 후유증이 컸다. 일제 조선총독부는 결핵 예방을 위해 고작 공공장소에 가래를 뱉는 담통(唾壺)을 설치하라는 법을 만들었다. 

결핵에 대한 본격적인 치료제는 1943년 왁스만이 발견한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cin)이다. 그 후 이소니아지드(isoniazid), 리팜핀(rifampin), 에탐부톨(ethambutol), 피라진아미드(pirazinamide) 같은 약이 개발되어 결핵을 치료했다. 김유정은 시대를 잘못 만나서 아무런 약도 써보지 못하고 결핵으로 죽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는 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 보려고 치열하게 글을 썼다. 죽음이 목전에 올 때까지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옛날에 많은 유명인들도 결핵으로 목숨을 잃었다. 데카르트, 볼테르, 루소, 키츠, 칸트, 포우, 쇼팽, 파가니니, 쉴러, 키츠, 스피노자, 칸트,  포우, 쇼팽 등 일일이 다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B밀처방캠페인

B밀처방캠페인
예비약사세미나

많이본 기사

이벤트 알림

유비케어

약공TV베스트

팜웨이한약제제
그린스토어2

인터뷰

청년기자뉴스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