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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들이 만든 음료 '코카콜라'·'펩시콜라'

<마지막회> 앤디워홀 회화 『코카콜라』

2014-05-27 06:00:44 약사공론 기자 약사공론 기자 kpanews@kpanews.co.kr


앤디워홀 Andrew Warhol(1928-1987)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은 미국 화가로서 소위 팝아트(pop art)의 선구자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뉴욕에 정착해 잡지 삽화 제작과 광고제작 등 상업디자이너로 성공했다.  그 후 만화인물과 마릴린 먼로 등 유명인들을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로이 리히텐스타인(Roy Lichtenstein)도 같은 계열의 화가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고상한 것이 아니었다. 대중적인 물건들도 화가의 캔버스에 담길 수 있다는 표현정신을 선보였다. 

워홀은 이런 대중적 이미지들을 이용해 미국의 물질물화를 표현해 주목을 받았다. 주요 작품 중「캠벨 수프 Campbell's soup」는 달랑 상업용 스프 통조림을 한 개, 또는 여러 개를 그려 놓은 것이다. 토마토, 양파, 치킨, 비프스프 등 다양한 제품을 그려 넣었다. 전 같으면 '작품꺼리'가 안됐을 소재였다.  캠벨스프는 어쩌면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 사는 미국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을 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치킨스프나 비프스프는 몸이 아플 때 먹는, 몸보신 개념의 음식으로 꼭 우리나라 닭곰탕이나 곰탕 맛이다. 


앤디 워홀, Campbell's Soup Cans (1962)


앤디워홀의 작품 중에 『코가콜라』도 있다. 코카콜라 만큼 미국인들에게 많이 팔린 음료수는 없을 것이다. 코카콜라야 말로 미국 물질문명을 대표하는 음료수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 코카콜라의 개발자가 바로 약사다.

약사출신 남군장교 존 펨버튼(John Stith Pemberton, 1831〜1888)은 남북전쟁 때 입은 부상을 계기로 모르핀에 중독이 됐다. 그는 아편에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식물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진통효과 뿐만 아니라 맛도 좋은 약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지아주 콜럼버스의 약국에서 여러 가지 시도 끝에 코카나무와 콜라나무를 주원료로 한 달콤한 갈색시럽을 만들었고, 이것을 제이콥스약국에서 1896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코카나무 잎에는 코카인이 들어있고 콜라나무 열매에는 카페인이 들어있다. Coca와 함께 Kola를 Cola로 바꿔서 붙인 이름은 'Coca-Cola'라는 유명한 브랜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펨버튼은 약학분야로 이름난 메이컨대학을 졸업해 약국을 개업했다. 조지아주 약사면허발급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85년 프렌치와인코카로 특허를 받았다. 이 음료는 신경을 흥분시켜 원기를 돋우고 두통을 없애주었다. 여기에 약간의 알콜이 들어 있었는데, 조지아주에서는 금주법이 제정되면서 이 제품은 금지약품이 되어버렸다. 펨버튼은 코카잎과 콜라열매, 카페인 등 약리작용이 있는 성분을 그대로 두되, 알콜성분을 제거해야했다. 알콜 대신 사탕수수를 넣어 쓴맛을 없앴다. 당시 펨버튼의 제조법은 지금도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당시 이 음료는 모르핀 중독, 소화불량, 신경쇠약, 두통, 피로회복, 조루증 등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잡지에 광고됐다. 처음에는 이 음료를 물에 희석해 팔았는데 실수로 탄산수로 희석했더니 더 반응이 좋아 지금의 코카콜라가 된 것이다. 


앤디 워홀의 『코가콜라』작품들 (1962)


56세 펨버튼이 건강문제로  젊은 약사인 동업자 아사 캔들러에게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지분을 넘기고 1888년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례식날 애틀란타시의 모든 상점이 커튼을 내려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캔들러는 코카콜라 사업의 총책임자가 되어 현재의 코카콜라 유리병의 디자인도 공모해 만들었다. 코카콜라병의 디자인은 허리가 잘록한 여성의 몸을 본떠서 만든 디자인이 차용됐다. 볼록한 부분 때문에 콜라의 양이 많이 들어갈 것을 우려했지만 실제로 담기는 양은 이전의 80%로 줄었다고 한다. 이러한 아름다운 디자인이 앤디워홀의 작품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다. 코카콜라가 처음 판매됐을 때부터  코카엽에서 들어갔던 코카인은 1903년 공법으로 완전제거했다. 

'펩시챌린지'라는 말이 기억날 것이다. 그런데 이 펩시콜라의 개발자도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을 졸업한 약사인 칼레브 브레함(Caleb Bradham,1867〜1934)이다. 1893년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뉴베른에 있는 그의 약국에서 'Brad Drink'를 만들어 팔았다.  처방에는 Kola나무열매와 소화효소 pepsin을 썼으며 소화제 기능과 에너지 보급용으로 만들었다. 나중에 'Pepsi Cola'로 상표를 바꿨다. 


앤디 워홀, Close Cover Before Striking (1962), 40x50cm

앤디워홀은 미국문명의 상징인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가지고 그의 팝아트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워홀의 작품 중 앤디 워홀의 1962년 작 '코카콜라 Large Coca Cola'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약 395억원에 팔렸다. 엄청난 금액이었다. 워홀은 펩시콜라도 그렸다. 그런데 병뚜껑만 그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콜라인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개발자가 모두 약사라는 점이 특이하다. 사실 약사들은 교과과정에 생약학, 천연물학, 조제학, 영양학, 식품위생학 등을 배우고 있어서 콜라와 같은 식물추출물 함유 레서피를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약사들의 직역확대 측면에서 식품분야로의 진출은 뛰어난 약사들의 능력발휘에 또 다른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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