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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

박일영 충북대약대 교수 '조정과 합의 거부하는 미착용은 눈감고 칼 휘두르기'

2020-09-29 05:50:40 약사공론 기자 약사공론 기자 kpa3415@kpanews.co.kr


박일영 충북대약대 교수.

예년 여름들과 다르게 더위와 장마가 번갈아 기승을 부리더니, 찾아올 것 같지 않던 선선한 아침과 파란 가을 하늘이 슬며시 찾아왔다. 

이런 날에는 가까운 산기슭에 산책을 나가고 싶어진다. 작년에 구석진 기슭 밤나무 밑에서 반짝이며 뒹굴던 밤톨들을 올해도 만날 수 있으려나? 아직 좀 이를까? 돌아오는 길에는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저녁도 같이 하고 싶다. 소주 한두 잔에 이런 저런 얘기 도란도란 얹어서….

바라지 않는 손님인 코로나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마구 휘저어 놓고 있다. 여태껏 겪어보던 전염병들과는 다르게,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보이는 기막힌 감염력과 갑자기 몰아치는 폐렴 덕에 우리 사회는 개인의 생활 뿐 아니라 소주 한 잔의 만남도 자제할 수밖에 없다 보니 이제는 생존에까지 위협을 받는 이웃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인간은 태생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라서 고립된 상태에서는 누구든 편안하기가 어렵다. 서로 만나고 어울려 풀어내지 못하는 불안감에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나 또는 정치적 불만이라든가 다른 이유들도 섞인 것이겠지만,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심심찮게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는 소리들이 터져 나와서 그렇잖아도 우울한 얼굴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비록 코로나라는 괴물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도 인정되어야 하는 것일까? 영국의 권리장전과 프랑스 혁명 이후 크고 작은 피 흘림을 수없이 겪으면서 얻어낸 개인의 자유란 너무도 소중한 가치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개인의 어떤 행위도 자신의 판단과 취향이자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책임일 뿐 다른 이들에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어느 사회에서든 개인의 행동은 그와 동선이 겹치는 타인의 활동범위를 크던 작던 침범하게 되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편의 자유가 아내를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고, 아내의 자유가 남편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혹은 길거리에서 문득 만나는 옷차림이 불편한 경우도 있고, 누군가의 눈길이 오싹해질 때도 있다. 

상대방의 눈길이 문제인 걸까?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문제인 걸까? 상대방의 자유가 잘못된 것인가? 또는 내 불편함이 상대방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가?

같은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상 개인은 가정이든 직장이든 또는 국가든 그가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의 하나임을 피할 수 없다. 내가 마시고 내뿜은 공기를 주위의 다른 이들이 다시 마시게 된다는, 또는 옆 사람의 날숨이 내 들숨이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매일 부대끼며 살면서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어느 먼 동네의 나비의 날갯짓이 우리 동네에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했던가? 개인의 행동은 크든 작든 주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민주국가의 국민이라 하여 '내 마음대로 할 자유'가 무조건적으로 주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소중하면 상대방도 소중한 만큼 결국 어느 사회에서 허용되는 '행동의 자유'란 해당 공동체의 구성원 사이에서 '서로를 침해하는 정도에 대한 상호 양해'가 전제되어야만 성립되는 개념일 수밖에 없다. 그 '양해'란 게 그 사회의 '상식'일 수도 있고, '도덕'이나 '법'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법'도 사회적 합의에 다름 아니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가 이런 판단의 기준선을 잊어버렸거나 또는 애써 무시해가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어느 사회든 개인의 판단과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의견의 다양함은 혹시 놓쳤을지 모르는 다른 쪽 면이 있음을 일깨워줄 수도 있고, 어쩌면 자칫 흘려버릴지 모르는 위기를 경고해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좋은 사회가 되려면 다양한 의견들이 허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의 가치' 역시 전제조건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간과한다. 사회란 하나의 공동체이며, 공동체란 해당 공동체에 닥쳐온 문제에 대하여 선택할 수 있는 대응 방법이 하나인 집단이다. 

예를 들어 이웃나라에서 무리한 행동으로 나올 경우 전쟁으로 나서거나, 참고 달래거나, 아예 무시하거나 등을 동시에 다 선택할 수는 없으며, 여러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 선택의 결과는 구성원 모두가 함께 감수하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견의 다양성' 역시 취사선택에 따른 결과가 구성원 모두에게 강요되는 것이기에 다른 쪽의 의견도 되새겨 보아야만 하는, 결과적으로는 구성원 간의 '조정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어야 하는 가치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마스크를 쓰는 일은 미세먼지나 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행위일 뿐이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결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당사자의 건강문제일 뿐이다. 코로나-19를 단순한 감기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나는 감염되어도 좋아'라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행위가 타인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문제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한편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코로나-19의 감염력과 위험성을 세세히 느껴 알 수는 없으므로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에게는 마스크를 벗는 일이 그리 위태로운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감염되었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주위의 누군가를 감염시킬 수 있고 그 누군가는 고통 속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면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는 용인될 수 없다. 내 행동이 초래하는 심각성을, 그러한 행동을 선택하지 않은 다른 누군가가 감수해야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지금,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눈감고 칼을 휘두를 자유'에 다름 아니다. 행동이 아닌 의견의 다양성도 구성원간의 조정이 가능할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일진대 조정과 합의를 거부하는 행동의 자유는 만인에 대한 개인의 강요이거나, 또는 집단 패싸움일 뿐임을 다 같이 상기했으면 좋겠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함으로서 우리 경제를 바닥부터 무너뜨리고 있는 코로나-19라는 낯선 바이러스를 만나 우리나라도 물론이거니와 세계의 관련자들은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들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까지는 뾰족한 치료제도 백신도 보이지 않고 암울한 예측들도 난무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이 위기를 이겨나갈 것이며 어느 날 코로나가 사라진 세상이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문득 찾아올 것을 믿는다. 마음 편히 친구도 다시 만나고 여행도 자유로워질 그 때까지 힘들어도 조금씩 참고 서로를 배려함으로서 도와 견뎌내는 우리 사회이기를 마음깊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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