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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후진국' 그 부끄러움에 대하여

2021-05-03 15:05:35 감성균 기자 감성균 기자 sgkam@kpanews.co.kr

흔히 제약 영업을 ‘막장’이나 ‘끝판왕’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동원해 묘사한다. 영업 직종 중 가장 어렵고 힘들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리베이트’ 때문일 것이다.

‘먹고 사는 일이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자사 제품을 론칭시키기 위해 의사는 물론 그 가족에게까지 기상천외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느껴야 하는 말 못할 모멸감이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탓에 제약 영업이 ‘막장’으로 취급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 수많은 제약영업사원에게 모멸감을 느끼며 ‘먹고 살게 한’ 구조적 문제는 ‘나쁜 사장님’에 더해 이를 방조한 보건당국이 만든 것이었다. 

리베이트 영업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제네릭 난립의 국내 제약산업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한 성분 당 수백가지 품목이 경쟁하게 되어버린 시장은 ‘리베이트’를 자연스럽게 동반했고, 이에 익숙해져 버린 의사들은 필사적으로 대체조제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약국 현장에서는 불용재고가 산처럼 쌓이게 됐고, 환자들은 자기결정권을 잃어버렸으며, 정부는 재정만 낭비하는 꼴이 됐다.

그나마 이 부끄러운 후진국적 구조가 이제 그 해결의 첫 단추를 끼우게 됐다.

지난 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의약품 위탁생산 제한을 주 내용으로 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똑같은 생물학적동등성 시험자료나 임상시험자료를 이용해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기존 제도에서 품목허가 수를 4개(1+3)로 제한하도록 변경한다는 것이다. 위탁개발업체에 돈만 주면 제네릭을 무한정 뽑아낼 수 있는 기존 관행을 중단하고, 제네릭 난립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이번 약사법 개정안으로 인해 동일 품목 난립에 따른 불공정 거래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의약품 품질관리도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협회와 산업계는 선택과 집중, 품질 혁신으로 국민들의 신뢰와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는 논평을 내놨다. 

오히려 산업계가 발빠르게 찬성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일부 중소제약사들에서 반발의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물론 이해는 한다. 자체 개발 역량이 미흡하니 제네릭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쉽게 생산해 영업사원들을 막장으로 몰아서 매출을 올리는 방식을 고수하며 ‘나쁜 사장님’이 되실 것인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거짓말 하지 마시라. 정부가 국민건강보험료로 제네릭 의약품에 고가의 약값을 보장해준지도 수십 년째지만, 2019년 기준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비 투자는 매출액의 6.6% 수준에 불과하다. 평균으로 말이다.

이번 법안 통과 과정에서도 이런 중소제약사들의 반발과 그로 인한 제약산업계 내 갈등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갈등의 소지가 있는 법안임에도 허구헌날 치고박던 여야조차 각각 발의한 제네릭 품목허가 수 제한, 자료제출의약품 품목허가 수 제한 법안을 통합 추진한 것은 그만큼 같은 품목 난립으로 인한 부작용이 선을 넘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앞서 규제개혁위원회가 ‘규제’로 주홍글씨를 새겼던 ‘1+3 제한’에 대해 관리감독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산업계가 지속적인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애초에 ‘변화의 불씨’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한 성분당 수백가지 품목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제네릭은 ‘의약품 접근성 확대’라는 기존 순기능이 무색할 정도로 지천에 깔린 나머지, 불법 리베이트의 요인이 되거나 적극적인 투자·개발 없이 먹고살 수 있다는 나태함을 심어왔다. 

NDMA 등 발암물질이 나타났을 때는 의약품 자체의 위해성보다 우리나라만 수백가지 품목을 회수해야 한다는 문제가 대두됐다. 2018년 당시 고혈압약 성분인 발사르탄에서 NDMA가 확인됐을 때 각국별로 문제가 된 품목수는 미국 10개, 영국 5개, 캐나다 21개에 그쳤으나 우리나라는 174개 품목에 달했다.

최근 문제가 된 의약품 임의제조에서도 위수탁 품목이 문제가 되어 위탁제조품목 수십개를 판매중지 및 회수조치했다. 매번 의약품 품질 관련 문제가 터질 때마다 수백개씩 적발 회수된다는 사실은 위해성 여부를 떠나서 의약품 품질에 대한 신뢰를 바닥없이 떨구기에 충분했다.

이에 정부는 제네릭 난립을 저지하겠다는 취지로 산업계에서 가장 민감해하는 ‘약가’까지 칼을 대며 지난해 7월 계단식 약가제도를 시행했지만, 무한정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는 현재 허가체계에서 약가 차등은 제네릭 품목 감소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무한정 품목허가를 제한하는 이번 약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이뤄지면 계단식 약가제도와 시너지를 통해 제네릭 난립을 해결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혹자는 기존 약물과 차별화해 복용편의성 등을 개선한 자료제출의약품의 경우 임상시험자료 활용을 제한하면 중소제약사의 개발의욕과 발전 가능성을 꺾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내놓는다. 

그러나 최근 78개 제약사가 226개 품목의 아토젯 제네릭을 등재한 것을 보면 자료제출의약품이라고 제네릭과 다르지 않다. 수백개의 같은 성분 복합제가 시장에서 경쟁한다면 제네릭 난립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요원하다. 도리어 공동생동에 막힌 기업들이 자료제출의약품에 몰리면서 풍선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있다.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이라는 나무에 아무리 물을 주고, 제약사의 R&D 투자와 혁신 의지가 뿌리를 내려도 제네릭 난립에 대한 가지치기가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은 요원하다. 

제네릭 난립으로 파생되는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고, 제네릭 중심 기업들도 장기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게 이번 조치가 제네릭의 경쟁력 강화로 제약산업의 구조적 발전을 도모하는 긍정적 결과를 도출해, 약사들도 떳떳하게 대체조제를 할 수 있고, 재고의약품으로 인한 낭비를 해소하고, 환자들도 안심하고 의약품을 복용하며, 건강보험 재정도 절감하고, 이것이 다시 보장성 확대와 제약산업 재투자의 선순환이 되는 시작이 될 것이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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