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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약국이 사라진 미래

대한약사회 권혁노 약국이사

2021-08-23 05:50:56

원격의료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다. 단초는 보건복지부가 제공했다. 복지부는 2020년 3월 한시적으로 전화처방?대리처방을 허용한다는 공고를 발표했다. 병의원을 통한 코로나19 전파를 막겠다는 명분이었다. 약 수령은 환자와 약사가 협의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원격진료와 약 배달을 표방하는 업체가 우후죽순 나타났다. 이들은 원격의료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하며 인터넷은 물론 지하철 역에까지 약 배달 광고를 하는 등 공격적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약사 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대한약사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최소한의 전화처방 등이 허용된 것일 뿐, 앱을 통한 원격의료와 약배달은 불법이라며 이 업체들에 고발로 대응했다. 그런데 상황을 정리해야 할 복지부는 뜻밖에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총리실은 한 술 더 떠 지난 6월 10일 규제챌린지라는 희한한 정책을 발표했다. ‘민간이 제안한 해외보다 과도한 규제를 도전적인 방식으로 개선’하겠다는 건데, 여기에 비대면진료와 약 배달을 각각 1번과 2번 안건으로 올려 놓았다. 

민간이 제안! 한 마디로 민간기업의 로비에 의해 추진되는 정책임을 실토한 셈이다. 어쩐지! 복지부가 상황정리에 미온적인 것도 기업의 압력 때문임이 어렵지 않게 짐작되는 대목이다. 퍼즐이 맞춰질 듯 갑자기 생각의 시계가 과거로 돌아간다. 

이명박정부는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대통령이 직접 복지부를 방문해 "외국에 가보니 수퍼에서도 약을 팔던데..." 운운하며 장관을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그 결과 편의점 안전상비약이 생겨났다. 박근혜 정부도 원격의료를 적극 추진했다. 화상투약기도 규제샌드박스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약사사회를 괴롭혔다. 

편의점약, 화상투약기, 그리고 약 배달 앱! 들여다 보면 이름은 달라도 목표는 하나다. 의약품을 약국이 아닌 곳에서 팔 수 있게 해 달라! 약국이 아닌 인터넷과 통신판매로도 약을 팔 수 있도록 기업들에게 길을 터달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들이 줄기차게 그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국민의 건강도 행복도 아닌, 어이 없게도 그저 '외국은 하니까' 이다. 그 속에 의약품 시장을 가져가 이윤을 챙기겠다는 탐욕이 자리잡고 있음은 불문가지이다. 

약사들이 목숨 걸고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밥그릇 문제를 떠나 이면에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게 뭔지는 원격의료가, 그리고 약 배달이 성행하여 ‘어디든 배달’을 외치는 기업형 배달 전문 약국이 생겨난 미래를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다.

동네 약국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 모두 사라질 것이다. 환자들은 앱이나 인터넷으로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받는다. 처방전은 어디론가 전송되고, 약은 약사가 짓는지 위생적으로 조제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집으로 배달된다. 복약설명서가 있지만 뭔가 답답해서 직접 물어보려고 앱으로 전화를 건다.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할 것과 상담약사에게 폭언하지 말라는 긴 기계음의 훈시를 듣고 나서야 상담약사와 연결 됐지만, 약사는 매뉴얼에 적힌 대사를 무표정한 목소리로 반복할 뿐이다.반바지에 슬리퍼차림으로 약을 사러 갈 수 있었던 동네약국, 말 안해도 나를 알아보던 약사, 굳이 이름을 대지 않아도 목소리만 듣고도 전화기 너머로 나를 알아보던 약사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약을 배달 받지 않아도 그 때는 편했는데…

그렇다. 약을 배달 받으면 편리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진료플랫폼 업체가 생기면 그 기업의 이윤은 어디서 나올까? 환자가 내는 이용료와 가입된 병의원, 약국이 내는 수수료(현재는 시장 선점을 위해 무료로 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환자에겐 안내도 될 추가 부담이 생기고 병의원, 약국도 열심히 일해 얻은 수익을 거간꾼에게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된다. 업체가 더욱 커져 수퍼 갑이 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 진다. 업체는 각종 보험 상품 등의 부가서비스를 플랫폼에 얹어 이용자의 주머니를 노릴 것이고, 업체의 갑질에 제휴 병의원과 약국도 소신에 의한 영업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환자는 안먹어도 될 약을 먹고 안받아도 될 검사와 수술을 받으며 업체의 배를 불리는 데에 이용당할 것이다. 의료와 의약품의  공공성은 사라지고 인간의 생명과 건강마저 급속히 영리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의 경제부처는 말할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길이라고. 그럴까? 몇몇 스타트업 기업의 일자리와 비정규직 배달 일자리는 몇개 생길지 모르지만, 전국의 동네 의원과 동네 약국이 만들어내던 수많은 양질의 일자리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10만 개의 좋은 일자리가 만 개의 질 나쁜 일자리로 대체되는 것을 일자리 창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도 거의 사기에 가깝다.

더욱 문제인 것은 총리실이 이런 천지개벽에 가까운 정책을 당사자인 의료계와 약계와의 협의도 없이, 주관부처인 복지부가 해외보다 높은 규제의 필요성을 소명하지 못하면 그냥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코로나를 빌미로 은근슬쩍 비대면 진료를 기업에 풀어놓고 온갖 불법이 판치는 것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원격의료는 끊임없이 시도 되었지만,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국민, 그리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반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그런 민주당이 거대 여당이 되자 다시 이 정책을 추진하는 셈인데, 이거야말로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우버도 불법이고 타다도 안된다는 나라에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보건의료 정책을 이렇게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니, 정말 제정신인가?

4차 산업혁명시대, ICT 기술을 이용해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사각지대를 해소하며 효율을 추구하겠다는 사고는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전성 확보가 최우선이다.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의 보완적 수단으로서 최소한의 수준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당사자인 보건의료 관련 업계와의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 방식은 정부가 구축하는 공적 플랫폼을 통하는 방식이어야지,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민간에 풀어놓는 무책임한 방식이어서는 안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초기, 마스크 대란 속에서 전국의 동네약국이 공적마스크 공급에 헌신했던 때가 있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공무원도 하기 어려운 일을 개인사업체인 약국이 기꺼이 해냈다. 그런 동네약국은 지금도 동네의원과 함께 경질환과 만성질환 관리로 국가 보건의료의 한 파트를 묵묵히 담당해 오고 있다. 이러한 우수한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의료체계 상의 역할분담은 국민의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곧 선진국도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격의료, 약 배달이 아니라 돌봄이다. 커뮤니티케어를 안착시키기 위해 기존의 우수한 민간 인프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의료와 의약품 시장을 민간에 넘기는 순간, 의료서비스 비용은 폭등할 것이며 국민은 재난적 의료비에 신음하는 시대를 맞게 될것이다. 동네약국이 사라진 시대는 곧 재앙을 의미한다.


※ 본 시론은 약사공론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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