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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을 하는 의미, 내가 하는 일의 가치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임상약학대학원 겸직) 손현순 교수

2021-09-06 05:50:08

국민적 관심수준이 한껏 높아진 보건의료는 코로나19 터널 속에서 일상적 화두가 되었다. 정부와 언론이 전달하는 코로나19 관련 A부터 Z까지의 정보 덕에, 이제 온 국민은 일일 확진자수가 현 보건의료체계로 감당할 수준인지 신경 쓰고, 국산 코로나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대체 어디까지 왔는지 관심을 쏟고, 백신 접종에 따른 편익과 위험성을 꼼꼼히 따지는 등, 거의 절반은 보건의료분야 전문가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런 특별한 경험은 의료전문가에 대한 존경도 높이고 의료관련 전문가 직업에 대한 관심도 더 끌어올렸다. 보건의료 전문직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오래 지속되고 있지만, 면허가 주는 경제적 보상과 직업적 안정성에 따른 과거의 인기 요인 말고, 코로나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보건의료인의 선한 행위를 통해 직업 본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게 된 최근의 긍정적 요인이 추가되었다고 본다. 앞으로 학생들이 의대나 약대를 지원하는 동기가 좀 더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의료의 공공성 확대에 대한 대중적 공감 반대편에서는 의료인력 입학정원 감축에 대한 요구도 일어나고 있다. 최근 의협은, 인구감소시대에 의사인력 과잉으로 경쟁이 심화되면 불필요한 의료서비스와 과잉진료로 이어지고 그 결과는 의료비 증가,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피해를 볼 거라며, 의사인력 증가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 발생을 부각시키고 있다.  

약사 인력은 어떤가?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인력 중장기 수급 관련 연구결과를 보면 2030년 약 2500여명의 약사인력 과잉을 전망하였다. 이런 전망치와 금년 상반기의 신규약사 구직난 경험사례를 가지고 보건복지부 신문고에는 약사인력 과잉 우려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었다. 보건복지부 입장은 약사의 진출분야 다양화로 요약되는데, 사실 이런 대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9년에 15개 약대, 2020년에 2개 약대의 추가 신설이나 내년부터 통합6년제로 약대 학제가 개편되는 정책들은, 본래 제약산업 진출 약사수를 늘리고, 병원에서의 임상전문성을 강화한 약사 수요를 충족시킬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다. 당초 정책적 기대와 달리, 지금 제약산업 진출 약사수는 미미하고, 병원의 임상약사 수요는 증가하지 않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약국 진출 약사수가 많아져버린 상황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러나 약사인력이 공급과잉인지는 좀 더 두고 볼 문제다. 일단 금년 초 신규약사의 구직난은, 코로나19가 국내 고용시장 전반에 미친 영향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던, 구직까지의 시간이 조금 길어진 현상으로 이해하고 앞으로 지속성 여부를 관찰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매년 약 2천명씩 배출되는 신규약사들 중 당초 수급계획에서 예측했던 숫자만큼의 약사들이 제약산업 연구·개발 분야와 병원 임상분야로 진출할 수 있게 동기부여와 여건마련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약사개인의 직업 선택은 철저히 개인의 자유영역으로서 정부의 의도적 개입이 불가하기 때문에, 학생 자발적으로 신약개발의 꿈을 키우고, 전문약사제도 시행과 함께 병원경영자들이 약사전문성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서, 약사인력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이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 터널도 벗어나고 진출분야 조정도 일정부분 이루어진 다음, 정말 약사인력이 과잉인지 정확히 분석해서 그 이후를 논의해야 할 터인데, 그러려면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 사이 보건복지부와 약사회는 상황 진단과 의사결정에 이르는 논의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의사결정의 정당성과 미래 예측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인구감소는 엄연한 현실이고 그에 따른 의료수요의 자연감소분을 고려하면 약사 인력은 축소되어야 하겠지만, 적정인력규모 추계시 인구요소 말고도 보건의료 정책 환경의 변화 또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미래사회에 약사가 어떤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지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약사직능범위를 규정하는 것과도 연동해서 결정해야 한다.      

조금 냉정하게 짚어볼 부분도 있다. 공급과잉에 따른 부정적 측면을 심히 우려하는 것은 전문가집단 내부의 관점이다. 선진입한 선배들이 현재의 권한을 유지하는 데 가장 안전한 방책은 대학 정원축소나 약사배출 인력 수 제한인데,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부족하고 넘친다는 판단은 누구의 관점인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특히 전문가 숫자 문제의 경우, 전문가들이 도덕적 해이 없이, 국민과 환자의 선한 대리인 역할을 제대로 해 줄 수만 있다면, 의사와 약사 수가 증가하는 것을 국민은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전문가들이 시대흐름을 얼마나 정확히 읽고 소비자중심 관점을 얼마나 비중있게 반영해서 자신의 직업적 가치를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 약학대학은 통합6년제 1기 신입생 선발절차에 돌입했다. 고등학교 최상위권 학생들이 모두 다 약대 지원서를 쓴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약사라는 직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길래 그렇게 약대를 오고 싶어 하는지, 약사들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하면서 살고 있는지 그 실상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약학과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미래직업이 결정되는 몇 안 되는 과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에게 직업이라는 것을 깊이 고민해 볼 것을 권한다. 우선, 나의 삶과 나의 일, 행복과 돈에 대해 자기생각을 정리해 볼 것. 그리고 나는 왜 약사가 되려 하는지, 약사가 하는 일의 본질은 무엇이고 약사가 하는 일이 어떤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하는지, 약사로서 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은지, 내가 살고자 하는 미래가 내가 약사가 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것. 아울러 약사는 대개 평생 일을 하며 살기 때문에, 내가 일을 한다는 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도 생각해 볼 것.    

만일 내가 일을 하는 목적이 약사 직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 잘 닿아있다면, 더 없이 이상적이다. 약사가 왜 존재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무엇을 어떻게 해서 좋은 약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상상해보자. 만일 어떤 직업이 없어질 경우 세상이 안 돌아가거나 아주 불편하게 된다면, 그 직업은 매우 의미있고 쓸모 있는 일이 분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약사 스스로 물어보자. 나의 직업이 진정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    

경제적 안정성과 누구라도 선망하는 직업이라서 약대를 선택한다면, 졸업이후 약사로서의 일을 통해 자기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자신의 일터가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약사직업이 왜 필요하고 내가 왜 약사가 되고자 하는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선택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미래의 약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들이지만, 나 자신에게도 물어야 할 질문이다. 나는 왜 일을 하는지, 내가 하는 일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 ...


※ 본 시론은 약사공론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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