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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평론] 21세기는 맞춤약학 시대 <下>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2021-03-26 15:58:31 약사공론 기자 약사공론 기자 sgkam@kpanews.co.kr

 [상편에 이어]

4. 종래의 약물요법의 한계 

종래의 일률적인 약물요법, 즉 ‘인종이나 개인차를 무시하고 같은 약을 같은 용량 (same drug, same dose 또는 one size fits all)’ 식으로 투여한 결과 어떤 결과가 얻어졌을까?

 1) 많은 사람이 약 때문에 죽거나 고생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매년 미국에서만 입원 환자 중 10만 명이 약물 부작용 때문에 사망(추정치)하였고, 2014년에도 진통제 때문에 16,000명이 사망하였다. 이는 환자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맞지 않는 약(wrong drug)’을 맞지 않는 용량(wrong dose)‘으로 사용한 때문이다. 좋은 약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2) 약이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종래의 약물요법에서는 처방된 약들이 기대했던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 비율이 매우 낮았다, 그림에서 보듯 특히 항암제는 제대로 된 약효를 나타내는 경우가 25%에 불과하였다. 역시 환자의 유전적 특성에 딱 맞는 약을 선택해서 정확한 용량을 투여하지 않은 탓이다.

3) 신약개발이 너무 어려웠다.

신약개발은 매우 많은 돈과 긴 시간이 소요되고도 성공 확률이 너무 낮다. 물론 성공하면 소위 대박을 꿈꿀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약개발이 도박과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신약 개발의 기본 조건은 유효(effective)하고 안전(safe)한 약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효하면서도 안전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동시에 추구하기 어려운 모순적인 목표처럼 보인다. 인체에 병소(病巢)에 뛰어난 효과를 갖고 있는 물질이 인체의 다른 부위에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아 안전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지만 실현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종래의 방법으로 신약을 개발할 경우, 대체로 70-80%의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에서 불합격되곤 하였다.

더구나 기존의 신약개발(임상시험)에서는 인종차나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위(無作爲, random)로 선정된 피험자(被驗者, volunteer)에게 신약후보물질을 투여하여 효과와 부작용을 조사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신약후보물질은 특이한 유전적 특성을 갖는 소수의 환자에게 나타나는 부작용 때문에 신약으로 승인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였다. 이는 신약의 출현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많은 환자들에게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인종이나 개인적인 유전적 특성 차이를 불문하고 지구상의 모든 환자에게 유효하고 안전한’ 그런 보편적인 약의 개발은 앞으로 점점 더 불가능해질 것이다. 유전체학이 발달할수록 유전 특성에 개인차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주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4) 부작용 때문에 시판 후 허가가 취소되고 시장에서 회수되는 의약품이 많았다.

시판된 후에도 부작용 문제 때문에 시장에서 철수시켜야 하는 약들도 많았다. 만약에 처음부터 약효와 부작용에 유전적 특성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환자 개개인에게 최적의 약물을 선택하여 투여했더라면 이러한 부작용이 나타나 허가 취소나 시장 회수와 같은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많은 환자가 치료용으로 잘 사용하고 있던 약이 다른 일부 환자에서의 부작용 때문에 허가가 취소되어 시장에서 사라져버린다는 것은 제약회사의 이익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허가가 취소된 약도 특정한 유전적 특성을 갖는 환자군에게는 잘 듣는 약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허가를 취소해 버리는 것이 반드시 능사는 아닐것이다.

5. 대안은 맞춤약학  

그래서 이제는 종래의 무분별한 약물요법 대신 유전적 특성을 포함한 환자 개개인의 특성, 즉 개인차를 반영한 ‘맞춤약학, 또는 맞춤의료 (Individualized PharmacyIndividualized Medicine, Personalized Medicine)’를 시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예전에는 대개 양복점에 가서 자기 몸에 맞게 양복을 맞추어 입었다. 지금은 대량생산 시대라 기성복을 사 입는 것이 대세이지만, 나처럼 몸의 체형(體形)이 평균치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자기 몸에 딱 맞는 기성복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은 거북하고 불편한 일이다.

구두도 마찬가지이다. 옛날에는 구두방에 가서 맞추어 신었는데 요즘은 대개 기성화를 사 신는다. 그러나 발이 매우 크거나 작은 사람은 기성화 중에서 크기도 맞고 예쁘고 편한 구두를 사기가 쉽지 않다. 그런 사람은 역시 구두를 맞추어 신어야 발이 편하다. 발에 구두를 맞추어야지 군대처럼 기성화에 발을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식한 일이 아니겠는가?

약의 경우도 양복이나 구두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딱 맞는 약(right drug)을, 정확한 용량(用量, right dose)을 택하여, 올바른 시간과 방법(right time and right way)으로 복용해야 한다는 것은, 비록 뒤늦게 깨닫기는 했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진리이다. ‘맞춤약학’은 약의 치료 효과를 최대로 높이고, 약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당연한 귀결이다.

 1) 맞춤치료와 임상약학

실제로 종래의 마구잡이식 약물요법 (One-size-fits-all medicine) 대신 맞춤치료를 해 봤더니 약효가 훨씬 좋아졌다. 예컨대 유방암 환자에 대한 허셉틴(Herceptin)이란 항암제의 반응률(치료효과)이 5배나 높아졌다. 허셉틴(trastuzumab)은 Her2 수용체에 결합하여 Her2 signaling을 차단함으로써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항체 항암제이다. 

유방암 환자의 25-30%가 이 Her2 유전자를 세포 표면에 과잉 발현하고 있는데, 유방암 환자를 ‘동반진단법’을 통해 Her2 발현 여부에 따라 2그룹으로 나누어 Her2 발현 환자에게만 이 약을 투여했더니 항암제에 대한 반응률이 10%에서 50%로 급증한 것이다. 

과거에는 Her2 발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모든 유방암 환자에게 허셉틴을 투여했기 때문에 암은 치료되지 않고 항암제의 부작용만 나타났던 것이다. 맞춤약학의 관점에서 돌아보면 이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무식한 약물요법이었다. 

이렇게 특정 유전자 발현 여부를 사전에 검사하는 것을 앞에서 언급한 대로 동반진단이라고 하고 이 결과에 따라 약물을 선택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맞춤치료’ 또는 ‘맞춤약학’이라고 부른다. 개인별 맞춤약학의 발전 개념을 그림 5에 보였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 안전처도 2007년에 “Carvedilol”이라는 고혈압 약물을 사용할 때, CYP2D6라는 약물대사효소의 유전형을 고려하여 처방하라는 내용의 의약품 허가사항을 발표하였고, 2009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항 혈액응고약 ‘와파린’의 대사효소(CYP2C9)와 개인의 VKORC1 유전자형을 고려하여 와파린의 용량을 결정하라는 정보를 의약품 허가사항에 포함하였다.

이제 미래의 병의원이나 약국에서는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보고 약을 처방하고 조제하게 될 것이다. 즉 병의원이나 약국에 가면 신용카드처럼 자신의 유전적 특성 정보가 실려 있는 ‘유전정보 카드’부터 제출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약대 6년제에서의 임상약학(臨床藥學, clinical pharmacy) 교육은 약물유전학을 이용하여 약물의 사용을 개인별로 최적화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삼아야 할 것이다. 

 2) 맞춤약학과 ‘맞춤신약개발’

한편 제약회사의 신약개발도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피험자를 랜덤하게 선정하는 종래의 방법 대신 유전자 검사를 통해 특정 유전 특성을 가진 피험자군을 피험자로 선별하여 임상시험을 함으로써 신약개발의 실패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유전적 특성을 갖는 환자군에 가장 알맞은 (specific 한) 신약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옛날처럼 인종이나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는 ‘묻지마 약’처럼 한 종류의 약을 전 세계의 모든 인류에게 사용할 수 있을 것처럼 주장하는 마술 같은 약의 출현은 보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유전자 분석을 통한 ‘맞춤 신약의 개발’은 제약회사의 입장에서 신약개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기존의 임상시험을 통해서는 신약으로 승인될 수 없었던 후보물질이 신약으로 개발됨으로 해서 많은 특정 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다. 

유전적 특성이 다양한 환자에게 맞춤형 치료약이 개발된다는 것은 환자들에게 복음(福音)과 같은 일이다. 그래서 ‘맞춤신약개발’은 맞춤치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이렇게 개발된 맞춤신약들은 나중에 환자에게 투여될 때에는 당연히 ‘동반진단’을 통해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확인한 후 사용되게 될 것이다.

 3) 맞춤약학의 한계, 윤리

이렇게 보면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전과 발맞추어 조만간 맞춤약학의 두 분야인 (1) 임상약학과 (2) 신약개발에 꽃이 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맞춤약학에도 윤리 문제 때문에 분명한 한계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우선 사람의 유전적 특성이 공개되면 주위로부터 차별대우를 받기 쉽다. 즉 약이 잘 안 듣는 사람, 또는 약으로 치료하기 힘든 사람으로 분류된 사람은 의료보험에 가입하기 어렵거나 보험료를 더 내야 할지도 모른다. 

또 자신이 특정 병에 걸리면 치료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알게 되었을 때 심각한 정신적, 사회적인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의사나 약사가 환자의 유전적 정보에 대한 비밀을 지키기도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과학은 과학 홀로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과학도 사회가 용납하는 범위 내에서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치료제를 흔히 Ethical Drug이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윤리약(倫理藥)’이라는 뜻이다. 왜 치료제를 서양에서 윤리약이라고 부르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 치료제는 임상 사용에 특히 윤리가 필요한 약이라는 뜻일 것이다. 약은 환자에게 전해지는 마지막 순간에 반드시 약사의 손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약의 임상 사용의 마지막 단계를 책임지고 있는 약사의 윤리 의식 (ethics)이 가장 결정적이고 매우 중요하다.

이 단계에서 환자의 유전적 특성 및 약의 특성에 대한 약학적 실력과 함께 윤리(도덕, 사랑)가 약사의 핵심적 책무가 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과학이 발달할수록 더욱 윤리가 요구된다. 윤리 없는 과학의 결과는 두려움이다. 21세기 약사의 실력은 맞춤약학 (Individualized Medicine)에 대한 지식이겠지만, 그 지식은 건강하고 탄탄한 윤리 위에서 활용되지 않으면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론

21세기에는 맞춤임상약학을 통해, 좋은 약을 멋모르고 위험하게 사용해 왔던 종래의 무모한(?) ‘One-size-fits-all medicine’ 요법을 탈피 개선하고, 또 다소 위험한 약이라도 환자에게 최적화하여 잘 사용함으로써 그동안 극복할 수 없었던 수많은 질병, 
수많은 환자의 고통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맞춤신약개발을 통해, 유전적 특성이 다른 일부 환자군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문제 때문에 개발이 좌절되던 신약개발의 리스크를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이처럼 종래의 약물요법의 문제점이 극복되는 세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마땅히 그리되어야 한다. 이러한 약물요법의 발전 추세에 부응하고 나아가 견인하기 위하여 ‘약대 6년제의 중요한 목표는 맞춤약학의 실현’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윤리의 통제 하에 맞춤약학의 꽃이 만개하기를 기대해 본다. 창밖의 봄이 꽃의 개화를 재촉하고 있다.

참고문헌

1. 심창구(2013), 기성약 시대에서 맞춤약 시대로, 뇌약구체, 동아시아, 101-150.
2. 심창구 외 2인(2019), 약물유전체학과 맞춤약제학, 생물약제학과 약동학(교과서) 수정2판(약제학분과회 공저) 제6장, 181-204.
3. 심창구(2012), 약제학 발전사-조제학에서 맞춤약제학까지, 팜텍(한국 PDA), 5(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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