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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평론]제약 영업사원에게 고함

강수연 동국제약 제제기술연구소 상무

2021-06-14 05:50:07 최재경 기자 최재경 기자 choijk@kpanews.co.kr

약사공론은 국내 제약바이오 분야 최고의 석학 15명을 초빙해 ‘제약전문평론위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9월 시작된 제약평론은 국내 제약산업의 발전 방향을 주제로 R&D, 마케팅, 특허 등 다양한 분야별로 심도있는 논의와 의견이 제안돼 업계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약사공론은 '제약평론 시즌 3' 를 전격 진행한다. 이종욱 우정바이오 회장과 심창구 전 식약청장이 공동 좌장을 맡고 있으며, 강건욱 서울약대 약물학 교수, 강수연 동국제약 제제기술연구소 상무, 강춘원 특허법인 DKP대표, 고성열 미국 NIH 선임연구원,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 김대중 한국다이이찌산쿄 대표, 박일영 충북약대 교수, 배진건 이노큐어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 심유란 스마트바이오팜 대표, 안해영 FDA 전 심사국장이자 현 ABC 대표, 유진산 파멥신 대표, 이광현 일동제약 상무, 정세영 경희약대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한다. [편집자 주]


내가 처음 목격한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대학병원 교수실 앞에서 한쪽 귀를 문에 가까이 대고 서 계시던 팀장님의 모습이셨다.
"뭐 하세요?그냥 노크하면 안되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는 듯 늦깎이 PM인 나를 돌아보며 눈을 흘기던 팀장님, 그 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어려운 고객의 사무실 앞에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손을 털어 긴장을 푸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의아해했던 팀장님의 모습은 고객이 전화 중이거나 다른 사람과 급작스러운 미팅이 있어 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나면 기다렸다가 들어가려는 팀장님만의 심호흡이었던 것이다. 고객과 만나기 위해 열어야 할 문 앞에서 우리는 무슨 걱정이 그리도 컸던 것일까. 그게 20년 전이었는데 지금도 특별히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잠깐 오래 전으로 돌아가보려 한다.

항암제를 런칭한 우리 팀은 영업사원들을 호텔에 가두다시피 하고 일주일동안 교육을 시켰다. 용어 자체가 어려운 품목이고, 암종이나 환자 병기에 따라 이해하고 외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머리에 김이 나도록 공부한다는 표현을 들어 보기는 했는데, 정말 일주일 째가 되니 영업사원들의 머리에서 아지랑이가 춤을 추듯 올라오는 게 보였다. 두꺼운 책 세권 정도의 분량을 머리에 밀어 넣고 삐져나오지 못하게 꾸역꾸역 봉한 상태로 영업사원들은 현장에 배치되었다.

"야, 삼 씨엠 메츠…리…리버라는 데 이건 뭐냐?"
오늘도 어김없이 영업사원 A의 전화다.
"에? 그건 또 뭐야?"
"선생님께서 삼 씨엠 메츠라고 하셨어. 우리 약 쓰면 보험되냐고 물으시는데?"

매일매일 이런 내용으로 A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A는 의사선생님들의 전문용어가 이해가 안되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는 것을 한국 발음 들리는 그대로 수첩에 받아 적었다가 나에게 해석을 해달라고 했다. 말이 안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질문에는 대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떡하든 단어들의 파편을 엮어 퍼즐을 맞추곤 했다. 

받아 적은 단어의 토막이 너무 고약한 날은 하루도 걸리고 이틀도 걸렸다. 삼 씨엠 메츠 정도면 양반이었다. 찬찬히 A가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맞춰보니 간에 3cm(삼 씨엠)크기의 전이병소(metastasis,메츠)가 있는 대장암 환자였다.

"우리 약 보험 되는 환자분이야. 처방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지금 와서 생각하니 매일이다시피 그런 전화를 걸어야 했던 A의 마음이 궁금하다. 하지만 그 때 나는 힘들지 않냐고 묻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강했고, 문제를 풀고 나서는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가 다음 문제를 들고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차츰 단어의 파편들이 문장으로 변하더니 전화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A는 선생님과 마주 앉아 막힘없이 대화가 가능해졌고, 때로는 선생님을 위해 최신 지견이 담긴 논문도 먼저 찾아서 제공하는 영업사원이 되었다. 간단한 임상연구 아이디어도 제안하곤 했다.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일이 점점 즐겁고 감사한 일이 되고 있었다.

어느 날 급하게 영업사원 B가 전화를 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OO병원에 우리 약 3 바이알만 배송처리해 주세요."
"네, 환자분이 언제 투약 받을 예정인데요?"
"항암제 투여하려고 이미 입원하셨나 봐요. 병원에서 약이 모자란다고 3 바이알 더 달라고 하셔서요."
"알겠어요. 제가 처리할께요."
"근데…."
"왜요?"
"지난 번 교육하실 때 우리 약은 1회 투여 시 3바이알씩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 1회에 지금 단량으로 3 바이알 쓰시면 돼요."
"제가 알기로는 병원에 이미 3 바이알이 있고, 입원환자는 1명 계시다고 알고 있거든요. 환자가 1명인데 왜 약이 모자라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음…"

그 날 나는 병원에 확인 전화를 하기 위해 심호흡을 백번쯤 한 것 같다. 전문가인 의료진이 투여량을 잘못 계산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B는 꼼꼼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을 말하는 영업사원이었다. 당시 사용하던 항암제들은 독성이 심해서 환자 개인의 체표면적을 계산하여 개별 투여량을 결정하는 게 원칙이었고 우리 약도 마찬가지였다. 과량투여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투여량을 제대로 계산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약회사 직원이 의료진에게 전화를 한다? 결과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몰라서 솔직히 고민이 되었다. 시말서인지 사직서인지 알 수 없는 서류를 회사에 제출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결론적으로 환자를 담당하시는 주치의 선생님이 계산을 잘 못 하신 것이었고, 만약 그대로였다면 환자분은 적량의 두 배나 되는 약물을 투여 받으실 뻔했다. 처음 전화를 받으신 주치의 선생님 목소리에는 ‘네가 뭘 안다고 내 환자분께 약물을 얼마나 투여할 건지 물어보는 거야?’라는 불쾌함이 역력히 묻어 있었다. 

나는 한 번만, 딱 한 번만 계산을 다시 해주세요라는 심정으로 투여량 계산식을 설명했다. 내 얘기가 끝나자마자 잠깐의 침묵 뒤에 인사도 없이 철컥 끊어지던 전화, 하지만 나는 이 일로 B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B가 우리 약의 병원 재고수량을 파악하지 않았다면, 1회 투여기준을 외우고 있지 않았다면, 환자가 1명 대기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나에게 본인이 알고 있는 용법용량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나를 독촉해서 병원에 전화 걸어보라고 다그치지 않았다면 모두에게 슬픈 일이 벌어졌을 지 모른다. 

나중에  B는 무심한 듯 다행이라는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지만 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되뇌었다. 제품을 판매하고 매출목표를 달성하는 것, 그 이상을 넘어서는 곳에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역할이 있다고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영업가방을 집어 던지고 싶은 순간과 맞닥뜨리지만 그래도 그런 소신 하나 가슴에 품고 있어서 버틸 만하다고 말이다.  

제약 영업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A나 B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거의 똑같다. '항암제는 달라요' '대학병원이라서 그런 일이 가능한 거예요' '지금은 상황이 변했어요'. 한편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모든 반박에 나는 또한 반대한다. 

A나 B와 현장에 갔을 때 우리는 거의 매순간 심호흡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고객에게 말을 걸기는 커녕 문전박대만 받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국내 제약회사라서, 관심 없는 약물이라서, 제네릭 제제로 임상연구를 하자고 해서, 말해봐야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아서, 직급이 낮아서, 그냥 마케팅과 영업사원이어서, 처음보는 사람이어서… 문전박대의 이유는 참 다양하기도 했다. A도 B도 나도 그렇게 똑같이 바닥에서 출발하였다. 우리가 경험한 모든 일들은 바닥에서 출발하는 모든 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B가 배송을 요청한 약물은 팔기가 너무 어려워 출시를 꺼린 제네릭 제제였다. 의약품의 가치를 설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니 제품 교육을 하겠다고 했을 때 거의 모든 영업사원들은 반발했다. 

"제네릭을 파는데 공부가 왜 필요합니까? 성분만 말씀드리면 이미 선생님들이 다 알고 계시는 약인데, 더 설명할 게 있을까요? 선생님들이 귀찮아 하세요." 

나는 떼쓰듯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들이 한 번은 약물에 대해 물으실 거다. 일년 중 단 한 번일 수도 있다. 그 때를 대비한다고 생각하자. 단 한번 선생님이 약에 대해 물으실 때 전문가다운 대답을 할 수 있도록, 그 한 번을 위해서 준비하는 거라고 생각해보자. 별의 순간이라고 했던가, 준비하고 기다리면 세상이 내게 한 번의 기회는 준다. 

약이든, 질환이든, 환자에 관한 것이든 선생님의 질문에 한 번만 답을 잘 할 수 있다면 우리를 대하는 선생님의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선생님이 영업사원을 의약 파트너로 볼 것이냐 아니냐는 선생님이 결정하시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영업사원 본인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B가 나의 말을 귀담아들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의약 파트너로 인정받기 전에 그는 오히려 업의 가치와 의의에 먼저 기여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종종 제약 영업사원을 생각하면 큰 날개를 가진 나비가 연상된다. 제약업이라는 공간 속을 멀리 또 가까이 날아다니면서 꽃가루처럼 정보를 모으고 전달한다. 그런 노력은 열매를 맺기도 하고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침묵으로 끝나기도 한다. 사실 어떤 날갯짓은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영업사원이 만나는 고객들은 의약품만 궁금한 것이 아니다. 새로 개정된 허가기준도 궁금하고, 심평원에서 급여 정지된 약물도 궁금하다. 질환마다 달라지는 연구 경향도 궁금하고, 때로는 지역의 다른 병원들이 어떤 식으로 경영난을 타개하는지도 궁금하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 오후의 날씨에 관한 예보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영업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 당연히 있다. 나는 대답한다. 그 모든 것들이 제약 영업이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의약, 제약산업 생태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내 제품만 잘 안다고 영업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의료진들에게 가장 인정받는 영업사원의 자질 1순위가 '제품 디테일 능력'이 아니라 '성실함'이라는 조사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어느 고객은 영업사원의 조언으로 자주 쓰던 약물이 급여 삭감되기 전에 처방을 중지할 것이다. 어느 고객은 새로운 연구경향을 듣고 계획했던 실험을 수정할지도 모른다. 조만간 병원 문을 닫으려고 고민중인 어떤 선생님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 일년만 더 해보자고 결심하실 지 모른다. 

중요한 환자를 보느라 세미나에 급하게 뛰어가게 된 어느 고객은 당신 덕분에 우산을 챙길 것이다. 월말에 받아 든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제품을 중심에 둔 동심원, 고객을 중심에 둔 더 큰 동심원, 업계를 향해 확장되는 더 큰 동심원. 당신이 날고 있는 이 공간은 상상보다 훨씬 넓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 포함하고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남아있다. 업을 다시 정의하고 대답해보자.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 그 무게를 감당하고 싶은지. 

요즘에는 코로나로 인해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줄어들거나 없어지고 있다는게 또다른 어려움이다. 현장에서 제약 영업사원으로서의 '나'를 보여주기가 원천적으로 힘들어지고 있다. 영업이란 것을 제대로 해 볼 수 있는 장이 점점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거래가 있었던 곳에서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면미팅이 제한된 상태에서 새로운 거래처를 만드는 일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워졌다. 

어느 날은 고객 한 분을 만나는 일 자체가 하루의 목표이고, 경쟁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디지털 툴이 영업 액티비티를 대신한다고도 하고, 코로나 환경에서 제약영업의 체질변환 요구가 제기되기도 한다. 제약 영업사원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난관 앞에서 생존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나 기억하자. 우리는 맨 밑바닥부터 시작했었다.   

영업사원들에 대한 애정이 더할 수 없을 만큼 컸을 때 나는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소나기에 놀라 사무실 창문 가에서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다. 오전까지 맑았기 때문에 영업사원들이 우산 없이 외근을 나갔고, 어느 병원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업사원들이여, 일을 하다가 힘들 때 본사 건물을 향해 눈을 돌려 보시라, 당신을 응원하는 누군가가 나처럼 창문가를 서성이며 당신이 강건한 하루를 보내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만나기 전에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고객이 있다고 해도 용기를 내자. 어제 온 힘을 다해 준비한 내용을 오늘 고객에게 하나도 전달하지 못했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자. 당신이 정성을 다해 열심히 일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친구가 말해도 다시 힘을 내자. 

언젠가 고객도 당신이 문 앞에서 서성인 시간과 잠 못 이룬 밤들을 알게 될 것이다. 시간의 함수에 희망을 걸어본다면 세상도 조금씩 바뀌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고객도 세상도 변하지 않을지 모르나 당신의 삶은 바뀔 것이다. 

오늘도 가방안에 챙긴 것이라고는 거절당할 용기와 제약 영업사원이라는 자부심밖에 없는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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