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마더스스토리 공모전 약사 [편지]부문

우수상

존경받을 자격이 충분한 당신의 인생

김광덕 약사

엄마.. “뇌”라는 푯말이 붙은 캄캄한 방을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여 기억의 조각들 사이를 헤매고 또 헤매었습니다. “엄마께 쓴 편지”라고 아로새겨진 기억의 조각은 결국 손전등 불빛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교감에 서툴렀고 표현이 부족했습니다. 그 상대가 엄마라는 사실이 가슴을 더욱더 아리게 합니다. 1931년 지리산 산골짜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셔서, 가난으로 배움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시고, 나라 잃은 땅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신 엄마. 육체가 아우성치는 배고픔과 정신과 마음이 갈구하는 배움에 대한 열정이 주는 고통을 감내하며 보내신 엄마. 쌍꺼풀이 없어도 코가 오뚝하지 않아도, 뽀얀 피부를 가진 조그마한 얼굴이 꽃다운 18세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함을 한창 뽐낼 그 나이에 가난한 집안에 시집가신 엄마. 산으로 들로 또 남의 집 논밭으로, 하루가 24시간임을 원망하며 가난과 싸움에서 유일한 무기인 노동으로 맞서신 엄마. 숨을 헐떡이는, 가난이란 놈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동업자의 배신으로 망하고, 전 재산을 잃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막다른 인생의 길목에서도 아버지와 자식들을 생각하며 운명으로 받아들이시고 또 다른 희망을 찾아 매진하신 엄마. 유교적 남아선호 사상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위로 딸 넷을 낳고, 아들 둘을 더 낳으시며 여성에게 강요되는 불합리와 불평등을 이겨내신 엄마. 첫아들의 소아마비라는 불치병을 치료하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의 병원과 한의원을 찾아다니시다, 막차를 놓쳐 달빛의 안내를 받으며 이십 리 길을 걸어서 마을 어귀를 들어서시며 눈물을 훔쳐 셨을 엄마. 50년 동안 모든 종류의 희로애락을 함께 공감하고 공유한 아버지의 마지막 1년간 병간호와 임종을 혼자 감당하시며,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하는 고통을 감내하신 엄마. 80세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고, 본인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육신을 본인의 의지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육체와 홀로 사투를 벌이신 엄마. 작년에 림프종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판정을 받고, 의사의 조언과 엄마의 연세, 항암 치료 중 겪으셔야 하는 고통 등의 이유로 엄마의 항암치료를 결정하기 힘들어하는 자식들에게 치료를 거부하시며, 본인이 세상과 나눌 마지막 인사 방법을 스스로 결정하시어 자식들에게 부담을 들어주려고 하신 엄마. 가치 없다고 치부할 수 있는 인생이 어디 있으며, 소중하지 않다고 내팽개칠 수 있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당신의 인생이야말로 그 어떤 인생보다 아름답고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인생이 화려하였기에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인생이 이 세상에 유명한 무엇인가를 남겼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인생은 고달픔을 이겨내는 방법과 그 결과물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희생이라는 자양분이 얼마나 달콤하고 큰 열매로 보답해주는지를 증명해주셨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마음속 강인함이 아무리 큰 슬픔도 결국 기쁨의 종착역에 도달하게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현실의 장벽 속 평범한 삶이었을지 모르나, 본인 생의 결정권을 갖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누가 “평범함의 위대함”을 처음 말했을까요? 꼭 당신의 인생을 두고 한 말 같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매우 아름답고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부디 이 편지가 육체와 정신이 허락하는 시간 동안 당신의 인생에 더욱더 큰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가지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다행히도 의사 선생님의 예상보다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시며 저희에게 뽀얀 피부를 가진 조그마한 얼굴을 보여주시는 당신. 저희에게 더 많은 이별의 연습 시간을 주시길 기원해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저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것을 원망하며 엄마..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첫째 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