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마더스스토리 공모전 약사 [편지]부문

장려상

아버지의 열아홉 순정

소현숙 약사

아버지의 열아홉 순정 아버지는 만면에 희색을 띠고 tv 가요무대 프로그램에서 트로트 가수가 열창하는 가요 한 소절을 큰 목소리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른바 라이브 무대에 선 가수의 가창력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리듬에 맞추어 흥겹게 노래를 부르셨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 와서 관주 수액에만 영양을 의존하다가 침상에 누운 상태로 이제 겨우 한 두 수저의 죽만 드시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통증으로 신음하던 분이었는데..... “와, 아버지! 노래를 정말 잘 부르시네요.” “응, 내가 너희 엄마하고 소라산길을 거닐면서 백번도 더 부른 노래이지.” 소라산길, 아버지와 어머니의 산책로였던 소라산길은 친정집 가까이에 있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있는 체련공원이다. 아버지께 소라산길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아득해지는 마음을 느꼈다. 엄마는 치매를 앓다가 5년 전에 돌아가셨다. 무엇이 어머니의 뇌세포를 마비시켰는지, 어떤 아픔이 어머니의 뇌세포를 갉아먹었는지, 당신의 뇌리에서 무엇을 잊고자 하였는지, 어머니는 칠순이 가까워지면서부터 기억력이 급속도로 저하되기 시작했다. 집안에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집에 가야 된다고 하면서 전형적인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 잠가놓은 대문을 살며시 열고 나가곤 했다. 그 때 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주 다니던 길을 이리 저리 찾아다니며 가까스로 어머니를 찾아내거나,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어머니의 팔찌에 새겨져 있던 전화번호를 본 사람들의 연락을 받고 어머니를 찾으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시 대문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집에 가야 된다고 떼를 썼다. 아버지는 별 수 없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인근 소라산길로 산책을 나가신다. 그 소라산길에서 아버지는 평소 즐겨 부르던 가요를 어머니와 함께 수십 번씩 부르며 시간을 보내셨다 한다. 어머니가 걷는 것에 지칠 때까지 소라산길을 산책하다가 저녁 무렵에야 집에 들어가셨다고 했다. 평생직장이었던 교직에서 정년퇴직 전까지는 어머니와 함께 여가를 보낼 시간이 거의 없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환덕분에 꼼짝없이 어머니에게 붙잡혀서 데이트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그렇게 소라산길 데이트를 즐기면서 5년여를 보내다가 2005년 초여름, 가벼워진 나비처럼 몸이 마르더니 하늘나라로 홀연히 떠나가셨다. 나는 칠순이 넘은 노부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을 꼭 붙잡고 산책을 하면서 노래 불렀던 시간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으로 기억하련다. 그 시간만큼은 어떤 고뇌도, 고통도 두 분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고 오로지 아름다운 화음이 두 분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리라 생각하며.... 병환중의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소라산길의 추억을 생각하며 어머니와 즐겨 부르던 '열아홉 순정'을 열창하며 행복한 느낌에 젖어 계셨다. 숨어있는 장미꽃보다 더 밝은 열아홉 순정, 바람이 스쳐도 울렁~ 가만히 남몰래 응~ 내 가슴에 응~ 담아보는 진줏빛보다 더 밝은 열아홉 순정이래요. 노래를 부르다가 눈을 감고 누워계시는 아버지 곁엔 어머니가 열아홉 순정으로 다가와 아버지를 소라산 산책길로 불러내실 듯싶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다정한 연인이 되어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피톤치드 상큼한 향 뿜어내는 소나무숲길을 꿈길처럼 걷고 계시는 듯 미소가 안면에 가득하였다. 아버지! 그 꿈속에서 어머니와 오래 오래 머물다 오세요! 제가 아버지의 병상을 아침 햇살이 떠오를 때까지 지켜드리겠어요! 아버지는 병상에 누우신지 한 달 만에 그리운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 산책길에 장미꽃밭을 지났다. 봉오리장미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아버지의 노래가 아련히 들려왔다. 숨어있는 장미꽃보다 더 밝은 열아홉 순정~ 바람이 스쳐도 울렁 *아버지의 10주기, 어머니의 15주기에 즈음하여 하늘에 계신 두 분께 열아홉 순정의 편지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