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마더스스토리 공모전 약사 [편지]부문

장려상

엄마도 그랬우?

이신영 약사

엄마, 어젯밤 강변을 산책하다가, 아빠 목에 매달려 연신 재잘거리는 두세 살배기 사내아이와 그런 아이가 마냥 사랑스러워 꼭 껴안고 가는 젊은 아빠를 보는데, 순간 목이 메고 눈물이 왈칵 났어요. 결혼한 지 한참 된 아들이 아직 아이가 없어, 저런 살뜰한 행복을 누리지 못 하고 사는구나 싶으니, 저도 몰래 울컥했나 봐요. 제가 결혼해서 아이가 늦어져 마음 고생할 때, 지켜보며 애태우시던 엄마도 그런 적 있었우? 우리 4남매가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을 때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건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을 옴쏙옴쏙 먹는 새끼들 입”이라며 활짝 웃으시던 당신, 한여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반찬을 만들 때, 맛있게 먹을 아들 생각에 저절로 신이 나던 저, 같은 마음이었겠죠? 달랑 자식 하나 낳아 키우면서 살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면 “막내야,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다 잘되진 않는 법이니 너무 노심초사 하지마라, 몸 상한다. 매사 크게 생각하고 때로는 무심하게 살아가라” 하시며 등을 쓸어주시던 엄마. 젊은 나이에 자식 넷을 데리고 혼자 살아가야 하셨던 당신의 그 막막한 마음과 신산한 삶을, 부모가 되고나서야 깨달은 어리석은 자식은 어쩌라고, 그리도 담담하고 초연하게 살다가셨나요? 돌아가시고 난 후 찬장에 남겨진 매실주 반병과 낡은 커피포트.... 엄마, 얼마 전 집에 들른 아들이, 늘어져서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절 보고는 “아이구야! 외할머니 환생하신 줄 알았네!” 하더군요. 달려가 거울을 보니, 당신이 거기 서 계셨어요. 어느덧 우리 곁을 떠나실 때의 당신만큼 나이 먹은 제가, 엄마의 모습을 하고서 늙어가고 있더군요. 지난 날 어쩌다 목돈이 생겼을 때도 우리부터 먼저 챙기시던 엄마, “엄마도 멋진 옷 한 벌 사 입으시지”하면 “늙어서 좋은 옷 입어봤자 옷태가 나지도 않아” 하시며 애써 손사래를 치시던 당신과, 구닥다리 휴대폰 좀 바꾸라고 권유하는 아들에게 ‘늙은 사람에게 첨단 기능이 뭐가 필요 하냐’며, 저 쓰던 거 물려받고 대신 아들에게 신형 휴대폰을 사주고 흐뭇해했던 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이었죠? 간혹 아들이 서운한 말로 마음 아프게 할 때도 오히려, ‘훗날 내가 가고 나서 지금 일을 돌아보면 후회되고 괴로울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 아들을 안타깝게 쳐다보던 제 눈빛과, 막내 값 하느라, 버릇없이 대들고 속 썩이는 저를 바라보던 엄마의 처연한 눈빛은 닮아 있었겠죠? 시쳇말로 넘사벽인 당신의 크나큰 사랑에, 저의 부끄럽고 보잘 것 없는 사랑을 감히 갖다 대 봅니다. 당신의 모습으로 늙어가는 막내딸이 그 마음까지 닮고 싶어요. 엄마, 저의 영원한 뒷배이실 것만 같았던 당신이,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유언 한 마디 없이 우리 곁을 떠나신 후,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추스르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행여 그런 아픔을 제 아들도 겪게 될까봐, 미리 유언을 한 번 써보려고 며칠을 끙끙댄 적이 있었어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고맙고 행복했다, 미안하다, 사랑 한다’라는 말 외에는 달리 남길 말이 없었지요. 하물며 생전에 온 몸으로 그 마음을 자식들에게 쏟아 부었던 당신은 무슨 유언이 더 필요했겠어요? ‘이제 할 일 다 했으니, 자다가 가는 게 소원’이란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시던 당신의 마지막이 부디 편안했기를 바랄 뿐이에요. 엄마, 먼저 가신 아버지, 뒤따라 간 작은 언니 만나서 외롭지 않으시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전 마지막으로 할 일이 한 가지 남아 있어요. 무릇 세상의 부모들이라면 느낄 수 있는, 자식을 낳아 키워보지 않고서는 백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렇듯 가슴 벅차고 충만한 내리사랑을, 제 아들도 하루 빨리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제 기도가 이뤄지는 걸 봐야 하거든요. 때가 돼서 엄마 곁으로 가는 날, 우리 쌓였던 이야기 실컷 합시다. 주말의 명화도 같이 보고, 손잡고 산보도 하고, 꽃밭에 천리향 분꽃 채송화도 심고, 언제든 내키면 훌쩍 여행도 떠나보고... 엄마, 가 닿을 수 있으리라 여겨, 오랜만에 엄마께 하고픈 얘기를 하다 보니 무지무지 보고 싶네요. 엄마도 그러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