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마더스스토리 공모전 약사 [편지]부문

장려상

고등어 반 토막

이종학 약사

고등어 반 토막 올해도 호박 넝쿨이 담벼락을 타고 올랐습니다. 칡넝쿨이 참나무를 칭칭 감아 오르듯 온몸을 비틀며 온 힘 다해 기어코, 높고 가파른 흙벽을 타고 올랐습니다. 연약했던 초록 잎은 까슬까슬한 짙푸른 잎으로 변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모내기가 한창이던 늦봄,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돌아온 나의 점심상, 뜻밖에 고등어 반 토막이 올라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손으로 고등어를 찢어 손자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품앗이 모내기를 하러 가셨던 아버지께서 자기 몫으로 돌아온 고등어 반 토막을 호박잎에 싸 왔던 것입니다. 당연히 집에 계신 할머니, 당신의 어머니를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흔해 빠진 고등어지만 그때만 해도 언제든 밥상에 오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수선한 세상이었고, 밥 굶는 사람들이 흔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손자 생각에 당신이 드시지 않으시고, 놀다 돌아온 손자 입에 넣어 준 것입니다. 결국, 고등어 반 토막은 아버지의 아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넝쿨에 매달려 있던 작은 애호박은 점점 커졌습니다. 곤한 삶에 묻혀 작게만 느껴지던 어버이의 사랑은 내가 철이 드는 시간을 차지하고서야 넓은 그늘을 가진 큰 나무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손바닥 갈라지고 발바닥에 굳은살 박여 내 살 아플 때, 옹이 진 당신의 손마디가 생각났습니다. 고등어 반 토막이 내 몫으로 돌아온 사연을 알았을 때, 코끝이 찡해지는 진솔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 계십니다. 어느 초저녁, 땀 밴 삼베적삼을 벗으시고 툇마루에 걸터앉은 등 굽은 당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봉초 담배 연기 따라 하늘로 향한 당신의 주름진 눈가, 땀인 듯 고인 눈물을 나는 보았습니다. 한여름 밤, 모깃불 연기를 굳이 탓하며 훔쳐내는 당신 속마음도 어렴풋이 읽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서럽고 배고픈, 햇곡식이 나오기 직전의 계절을 아버지들은 ‘보릿고개’라 불렀습니다. 쌀과 잡곡이 남아 있는 집들은 햇보리 쌀이 나오는 6월 말까지 식구 수와 끼니를 계산해 봉지에 나눠 매달아 놓았습니다. 꼭, 한약방 약초 걸어 놓은 듯했습니다. 그렇게 걸어 둔 봉지는 긴 봄날과 함께 속절없이 줄어들었습니다. 줄어들 때마다 당신의 몫을 한주먹씩 들어내 다른 봉지 넣는 어머니, ‘자식을 굶길 수 없다는’ 단호한 당신의 의지를 나는 보았습니다. 며느리밥풀꽃의 전설을 되새김해야 할 만큼의 배고픈 시절, 푸른빛 햇보리를 빻아 먹을 것을 만드는 어머니의 부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배고프지 않다는’ 어머니의 거짓말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던 소갈딱지 없던 아들이 철들었을 때, 당신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 멀리 계십니다. 오늘도 호박 넝쿨은 아버지 손길 닿은 담벼락을 오르고, 시장에는 비릿한 고등어가 푸른 등을 보이며 좌판에 올려져 있습니다. 시장 앞을 지날 때마다 ‘호박잎에 싼 고등어 반 토막’이 생각납니다. 그것은 절대 잊힐 수 없는 ‘당신의 흔적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멀리 계셔서 이 글이 닿지는 않겠지요? 오늘처럼 호박잎이 무성한 계절이 오면 저는 무작정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그립고, 너무 보고 싶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