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마더스스토리 공모전 약사 [편지]부문

장려상

그 때

홍유경 약사

아우! 예쁘다! 우리 딸이 하면 뭐든지 예쁘네. 엄마가 직접 털실로 짜서 쓰고 다니던 쑥색 털모자있지? 그거 방울이 떨어졌길래 내가 반짇고리에서 비슷한 색 실을 꺼내 꿰매달고, 그리고는 부엌에서 부산을 떨고 있는 엄마 앞에서 써보았지 않았겠어.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산더미같은 감탄을 쏟아냈다. 그런 표정을 할 때 보면 안그래도 워낙 동안인 엄마는 더욱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이 젊고 예쁘지 뭐야. 엄마의 호들갑스런 폭풍 자식칭찬이 그 땐 그렇게 경박스럽고 싫었는데 지금은 너무 그립다. 엄마는 그 때 부엌에서 경수가 오면 차려낼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지. 이미 다 자라 각자 가정을 꾸린 자식들에게 여전히 뭔가 맛난걸 못먹여 안달인 엄마. 이미 고소한 부추전을 한바구니 부쳐놓았고 생선을 굽고 렌지위에는 늘 그렇듯 해물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어. 경수는 한 직장에 진득히 머물지 못하고 자꾸 이직을 했지. 그게 마음에 걸렸던 엄마는 틈만 나면 첫 직장 삼성전자를 경솔하게 뛰쳐나온게 화근이였다며 비슷한 레퍼터리로 한탄을 반복했고. 어릴 때 남달리 공부를 잘해 주변의 기대를 모았던 내 아들은 빙빙 돌면서 안전 궤도에 올라서지 못하는데, 내 아들보다 못했던 큰 집 조카는 3급 공무원으로 번듯하게 자리잡은 것이 못내 속상했던지 엄마의 단골 메뉴 중 하나가 큰집 사촌 승주오빠와 그 첫아들 경근이 아기시절 돌봐주었던 이야기였어. 대구가 본가인 승주오빠는 대학 시절 우리집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게 대학 들어가자마자 공부는 뒷전이고 운동권 선배들과 어울리더니 민주화 운동에 폭 빠졌잖아. 대구 큰아버지가 오빠를 군대에 보내버렸다가 제대 후 학교에서 한참 먼 동부이촌동 우리집에서 작은 아버지 감시하에 대학생활 후반을 보내도록 엄명을 내린거였지. 복학 후 야성을 잃고 한결 보들보들해진 승주오빠는 운동대신 연애에 몰입하기 시작했어. 마침 우리집 근처에 살던 같은 전산과 후배 혜경언니랑 장거리 학교길을 오가다 핑크빛 감정이 싹텄네. 이 커플은 우리집만 오면 오빠방에 들어가 한두시간을 꼼짝않고 틀어박혀 있다 나오는 것이었어. 내 방 바로 앞쪽이 승주오빠의 방이였는데, 예나 지금이나 남의 일에 무관심한 나는 저편에서 숨죽이며 벌어지는 사랑의 일들을 눈치채지 못했지. 오빠입장에선 참 편안하고 고마운 사촌동생이었을 거야.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동부이촌동은 알부자와 연예인이 모여 사는 부촌이었으니 이 화사한 동네서 대학생활 2막을 시작한 승주오빠는 새로운 자극에 눈을 떴던걸까? 결혼과 함께 안기부 공무원 공채에 떡하니 합격하여 행여나 다시 운동권의 길로 들어설까 좌불안석하던 큰아버지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어. 신혼집을 동부이촌동 우리집 근처에 잡고 맞벌이 생활을 시작한 오빠네의 첫아이 경근이를 엄마가 자주 돌봐주었잖아. 학교마치고 집에 가보면 엄마가 갓 돌지난 경근이를 말쑥하게 목욕시켜 베이비 파우다를 발라 하늘색 동그란 쿳션의자에 앉혀놓고 얼르고 있는 걸 보곤 했어. 사실 경근이는 희안하게 오빠와 새언니의 못생긴 부분만 닮은 듯 당시 내 눈에 예쁜 아가는 아니였다. 그래도 이럴 때 보면 분냄새나는 뽀얀 살갗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하긴 엄마손을 거치면 뭐든 예쁘게 되어서 나오니까. 승주오빠가 입사초 연수교육시절 낙하산훈련을 받다가 추락해 다리가 골절되었잖아. 맞벌이로 바쁜 새언니나 멀리있는 큰어머니를 대신해 돌봐주었던 것도 엄마였어. 하루는 집에 갔더니 목욕탕서 뭔가 펄펄 뛰는 걸 잡는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대야에 살아있는 장어 몇마리가 요동을 치고 있었다.비위도 약한 엄마가 골절환자에게 장어를 먹이면 좋단 말을 듣고 조카 주려고 사왔던 것이지. 내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지를 대했건만 조카자식은 결국 암것도 소용없더라 못내 서운한 기색을 드러내는 엄마가 2절로 사촌 미숙언니 이야기로 옮겨갈까봐, 나는 얼른 화제를 옮겼지. 엄마! 그런데 경수는 왜 이렇게 늦지? 올 때가 다 되어가는데 안 오네? 나는 가스렌지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해물탕과 벽시계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어. 그 때 엄마는 가스렌지 앞에서 나에게 등을 보인 채 해물탕의 불을 끄고 있었어. 경수야 왜 이렇게 늦는거야. 왜 이렇게. 해물탕도 다 끓었는데. 식기전에 먹어야지.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순간 기시감에 소스라쳤고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엄마 손에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엄마는 이미 죽었다! 두달전에. 그 때 나는 아직도 도착하지 못한 경수에게 이미 숨이 멎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따뜻한 엄마의 손을 잡게 해주고 싶어서 혼신을 다해 엄마 엄마..하고 귀에 대고 쉴새없이 속삭이며, 이미 떠난 엄마를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었다. 이미와 아직의 시간의 틈바구니에서 생긴 절벽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엄마를 붙잡고 있었다. 엄마! 이건 꿈인거야. 나는 식탁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가스렌지 앞에 서있는 엄마를 절규하듯 불렀다. 엄마 엄마 사랑해. 빨리 이리와. 한번만 안아볼래. 딱 한번만 나 안아주고 가. 엄마를 끌어안은 순간 서서히 엄마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잠깐동안 아주 미약하게 엄마의 살갗과 체온과 냄새를 느꼈는데, 느꼈다고 생각한 그 순간, 파스텔톤으로 은은한 생기가 넘치던 친정집 거실 벽지가 빛을 잃고 무채색에 가까와지더니 엄마의 형체가 흐릿해지고 중량감과 질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꿈에서 깨어나 무력하게 누운 채 나는 울었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그 날 새벽, 엄마 가시고 처음으로 엄마가 꿈에 나왔다. 가시고 56일만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605동 집에서. 가스불 위 국끓는 부엌과 옷가지 수선하는 안방을 오가며 나랑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 엄마의 모습은 육십대 초반쯤 젊고 건강한 모습이었어. 전혀 꿈이라고 생각할 수 없도록. 그리고 사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