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마더스스토리 공모전 약사 [사진]부문

마더스상

아버님께 올리는 글

주혜식 약사


안녕히 잘 계시나요? 세월이 너무도 많이 흘러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49년 반세기가 다됐군요. 나이가 들수록 특히 50살이 넘으니 더 생각이 납니다. 제가 어렸을 적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다리 저는 게 안쓰러워 구두 뒤 굽을 높인 토끼털 앵글 부츠를 맞춰 주신 거 어려서는 그냥 부츠가 좋아 신었지만, 나중에 커서 아버님께서 마음이 아파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어려서 살던 곳이 아이들 교육하기에는 너무 열악 정도가 아니라 정말 최악의 환경이었습니다. 한국군과 미군 그들에 의지하여 애처롭게 사는 많은 사람 매일 동네에서는 싸움이 난무하고 여자도 악다구니로 싸우고 애들도 쌍욕을 입에 달고 살고. 교육시설도 낙후된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빨리 간파하시고 자식들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아무 기반도 없는 서울로 과감히 이사 하신 것은 자식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그 일로 아버님께서 낯선 서울에서 고생하시다 7년 밖에 못 사시고 큰아들인 제가 16살 때 돌아가셔서 더 안타깝습니다. 중2 때 홍콩 독감 걸리시고 그 후유증으로 당뇨병이 오고 사제 당뇨약 부작용으로 간 경화 오고 일련의 일을 겪으시며 어머니와 어린 자식 때문에 얼마나 걱정이 많고 가슴이 아프셨나요.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던 고1 때 갑자기 공부를 잘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고서를 사게 돈 좀 달라고 하니 큰돈을 주시었고 책을 사고 남은 돈을 드렸더니 나중에 더 사보라시며 갖고 있으라 하셨지요. 마지막이 가까이 온것을 아셨지요? 별 말썽을 피우지는 않았으나 엄하게 키운다며 애들 매로 키우던 시절에도 한 대도 때리지 않으시었고 맞은 기억도 없습니다. 동네 애들도 대게는 친구 아버지를 무서워하는데 아버지는 애들이 좋아했습니다. 아셨나요? 정말 자상한 아버지셨습니다. 늘 제가 머리가 깨이질 않아 걱정하시고 아무래도 저는 공부는 안 되고 손재주가 좋으니 기술로 나가야 살 것 같아 드라이버 펜치 등 여러 공구를 사다 주셨지요. 중고등학교 입학시험 날 꼭 저를 데리고 학교에 가셨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제가 공부를 못해 떨어질까 봐 “해식아 너 엿 먹을래” 하시며 속 타는 마음을 괜찮은 척하시며 깨엿을 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시다 돌아가셨는데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공부 한번 잘 해보려고 결심했는데 그때 “아버지 공부 한번 잘해보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으면 눈감으실 때 조금이나마 가슴이 덜 아프셨을 거로 생각하며 후회합니다. 돌아가신 후 꿈에 나타나시더니 이제 오래되니 그것마저도 시들해지나 봅니다. 혼자 산에서 외로우시죠. 언젠가 아버지 곁으로 가겠지요. 저는 어려서 보다는 잘되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대답해 줄 사람도 없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억지로 억지로 공부했고 지금까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도 잘 자라 주었고 새아기도 무척 잘하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도 자손을 굽어살피신다고 생각합니다. 아버님의 그늘로 자식 모두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제 증손자도 태어났습니다. 특히 잘 돌봐 주십시오. 안녕히 잘 계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정말 꼭 하고 싶은 말입니다.